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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국립공원 구례 화엄사

청산(푸른 산) 2011. 3. 4. 13:54

 

화엄사는 6세기 중엽(백제 성왕 544년)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신라의 자장율사와 의상대사,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 등 여러 고승에 의해 중창되어

 조선 세종 6년(1424년)에는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5,000여 칸의 건물이 전소되고 주지였던 설홍대사는

300여명의 승려를 이끌고 왜군에 대항하다 전사하는 고난을 겪기도 하였다

석조물을 제외하고 현재 남아 있는 전각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세워진 것들이다.

 

 

지리산  화엄사 입구

 

 

나무 사이로 보이는 법고각 

 

 

 

화엄사  불이문

 

 

화엄사  금강문

 

 

 벽암국일도대선사비

화엄사 중창의 주역인 벽암각성의 탑비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참전하여 크게 활약하였고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축성하는등 조선후기 사회에서 불교계의 위상을 높이는데 공헌하였다.

 

 

 

 

 

 

 

 

 

 

 천왕문

 

 

 비파를 들고 있는 지국천왕과 보검을 들고 있는 증장천왕

 

 

 왼쪽이 광목천왕이고 오른쪽이  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왕이다.

 

 

 만월당

만월당의 벽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상왕문

 

 

 보제루 (유형문화재 제49호)

 

 

 보제루는 일주문을 들어서서 적당히 굽은 길을 따라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누각이다.

 

 

 대개 절에서는 누하 진입이라 하여 누각 아래로 들어가지만

 화엄사 보제루는 기둥을 낮게 하여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서게 만들었다.

각황전, 대웅전, 대석단이 펼쳐지는 중심영역의 장엄한 경관을

 보다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배려이다.

 

 

 보제루의 기둥은 자연 그대로의 굵은 나무를 굽은대로 설렁설렁 다듬어 써서 얼핏보면

 나무들이 춤을 추는 듯 하며 소나무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기둥이 더 매력적이고

단청도 하지 않은 고색창연한 자연스러움에 반하는 보제루는

1636년에 건립된 신도의 집회용 건물이다.

 

 

 범종각

 

 

 

 

 법고각

 

 

서오층석탑사리장엄구 (보물 제1348호)  

서오층석탑 (보물 제133호) 통일신라시대 9세기 말 ~ 10세기 초 높이 640cm 

서오층석탑은 12지신과 여덟무리의 신들, 사천왕이 함께 새겨진 드문 예로서

1995년 (무구정광다라니경)을 비롯한 유물 47점이 탑 속에서 발견되었다. 

 

 

대웅전 (보물 제299호) 

 

 

대웅전 삼신불탱 (보물 제1363호)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보물 제1363호)

화엄사 사적기에 의하면 1636년에 조각승 청헌, 영이, 인균, 응원 등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의 대표적인 승려장인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조성연대를 짐작할 수 있어 17세기 불상이 되는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대웅전은 인조때 건립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 지붕이다.

임진왜란? 소실된 것을 1636년(인조 14) 벽암대사가 재건하였다.

 

 

 

 

 동오층석탑(보물 제132호)

조각과 장식이 화려한 서오층 석탑에 비해 장식이 없고 단정하다.

 

 

 

 

 

 

 

 원통전

 

 

명부전 

 

 

대웅전에서 바라 본 보제루 

 

 

각황전에서 바라 본 대웅전 

 

 

각황전 (국보 67호) 

현존하는 최대의 목조건물로 조선 숙종 28년에 지어졌으며

현판을 직접 숙종이 내렸다고 전해진다. 

 

 

 

 

각황전 부처님과 문창살의 단아함이 조화를 이룬다.

 

 

대웅전 서오층석탑과 각황전의 모습 

 

 

 

 

원통전전 사자탑 (보물 제300호) 

통일신라때 건립된 것으로 화강석제이다.

상층기단에는 4구의 사자가 밑에 복련석을 밟고 있고 두부에는 양련석을

썼으며 그 위에는 1매의 판석이 연꽃무늬로 둘러싸였다.

 

 

각황전 앞 석등 (국보 12호) 

현존하는 최대의 석등 통일신라 9세기 말 ~ 10세기 초

 

 

 

 

 

 

나한전 

 

 

 

 

 

 

 

 

화엄사는 지리산 노고단 서쪽에 있는  사찰로써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이다.

대개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지만 화엄사는 각황전을 중심으로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공양한다.

각황전 중건 이야기를 하자면 계파선사께서 장육전 중건불사 기도를 올린지 백일되는 날 꿈에

 문수보살이 나타나 물 묻은 손에 밀가루가 묻지 않는 사람으로 하여금 장육전 불사 화주를 맡기면 중창불사를

이룰 수 있다고 하자 실험한 결과 공양주 스님이 뽑혀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는데 꿈에 문수보살이

나타나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권하라고 하시며 사라지는 것이다. 

공양주 스님은 부처님께 절을 하고 일주문을 향해 걷는데 남루한 거지 노파가

걸어오는데 절에서 잔 심부름을 해주고 누룽지를 얻어 가는 노파이므로 장육전을 지워주랴

싶었지만 간 밤에 문수대성의 교시를 생각하고 엎드려 장육전을 지어주기를 권하자 노파는

가난을 한탄하고 화엄사를 향하여 대 서원을 발하고 수십번 절한 뒤 소(沼)에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 후 오륙년이 지나 한양성 창덕궁 앞에서 공주와 마주치는데 이 공주는 태어나서부터 한쪽 손을 쥔채로 펴지 않았다.

화주승이 만지니 손이 펴지며 손바닥에 장육전이라는 석자가 쓰여져 있었다.

숙종대왕은 화주승을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 노파의 깨끗한 원력으로 공주로 환생했음을 알고 공주를 위해

장육전을 중창할 비용을 하사하였고 장육전이 완성되자 사액(賜額)을 내려 각황전(覺皇展)이라고 하였다.

부처님을 깨달은 왕이란 뜻과 임금님을 일깨워 중건 하였다는 뜻으로 각황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가져온 곳 : 
블로그 >A Bird Of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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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극락조|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