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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손님

청산(푸른 산) 2013. 4. 28. 07:19
★청산인

조용한 손님 - 엄재국 초가 한 채 무너졌다 벽도 기둥도 지붕도 땅 위에 조용히 무릎을 접었다 먼 길 다녀와 부모님께 절하는 자식처럼 오랫동안 엎드려 있다 썩은 짚에 바람이 들먹거려 우는 것도 같고 그을린 부엌 흙냄새에 매캐한 마음을 추스르는 듯도 했다 창문 하나 없이 나무문에 문풍지 문고리에 피어나던 사철 마른 봉숭아 코스모스같이 지고 있었다 홀연히 일어 섰던 제자리의 흙과 제자리의 나무, 제자리의 짚 거두고 챙길, 어디 골라낼게 하나 없다 일없이 온 손님처럼 그냥, 삭는 중이다 잘, 다녀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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