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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푸른 산) 2010. 8. 13. 09:55

선천적으로 귀 모양이 뭉개져 있거나 정상적인 귀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작게 태어난 소이증(小耳症) 환자가 '귀 성형'을 받기 위해 고려대병원 성형외과 박철(60) 교수를 찾아가면, 두 번 놀라게 된다. 일단 의사 얼굴 한번 보는 외래 진료 예약이 두 달 후에나 가능하다는 소리에 놀라고, 간신히 진료를 받고 수술 날짜를 잡으려면 5년 뒤인 2014년 달력에 수술 일정이 잡혀 놀라게 된다. 그만큼 그에게 '귀 환자'가 하염없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귓바퀴 전체가 얼굴 피부에 묻힌 '매몰 귀', 귀 위쪽 끝이 뾰족하게 선 '당나귀 귀', 귓불 이상, 소이증 등 귀 기형 수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전문가다. 갈비뼈 앞쪽 끝의 연골을 떼어내 귀의 골조(骨組)를 만들고 거기에 현미경 미세 수술로 피부를 자연스럽게 갖다 붙여 감쪽같이 정상인의 것과 똑같은 귀를 만든다. 그의 애칭은 '귀 성형의 마술사'이다

하지만 귀 성형이 6개월 간격으로 3번에 걸쳐 하는 정교한 수술이어서 그가 일주일에 처리할 수 있는 환자는 3~4명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 귀 성형을 받으려는 환자들이 수년씩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전국 30여개 대학병원을 대상으로 진료와 수술 예약 현황 자료를 받아 조사한 결과, 이처럼 예약 대기 환자가 수년 또는 수개월 밀린 의사들이 수두룩했다. 마음 급한 환자들이 그 세월을 참으면서까지 굳이 그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려는 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의료 소비자가 선택한 명의(名醫)'로 해석된다. 환자가 많이 밀려 있다고 반드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의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환자들이 오매불망 긴 세월을 기다린다는 것은 일단 환자들의 마음과 신뢰를 사로잡은 의사들로 볼 수 있다.

환자가 몰린 의사들은 주로 ▲재건 성형 수술 ▲어린이 사시(斜視) 수술 ▲화상 흉터 치유 수술 ▲무릎 인공관절이나 발 질환 전문 정형외과 수술 등 비교적 특수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의사들이 많다. 국내에서 손가락 기형 수술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백구현 교수에게 '손 환자'들이 1년씩 수술 대기하는 식이다.

암이나 심장병·뇌졸중 등 응급을 다투는 진료는 설사 환자가 특정의사에게 몰리더라도 질병 특성상 병원이 어떻게든 바로 처리하거나, 치료가 더디어질 경우 환자들이 즉시 진료가 가능한 곳으로 발길을 돌리기 마련이다.

특정 의사에게 환자가 쏠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이유는 박 교수처럼 한 분야에서 수십 년간 독보적 기술을 쌓은 경우다. 박 교수는 1980년대 후반 연세대 의대 성형외과 교수 시절부터 줄곧 귀 성형에 매달렸다. 당시 사고로 귀를 잃은 환자를 현미경 수술로 복원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귀 성형 매력에 빠져들었다. 병원 근무가 끝난 후 매일 자정을 넘어서까지 시체의 귀를 해부하면서 '귀 박사'가 됐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귀 환자'가 2200여명에 이르고, 그가 쓴 귀 성형 논문만 수백 편에 이른다.

환자들이 몇 년씩 기다려서라도 수술을 받으려는 이유를 묻자 그는 "그동안 이 분야에 전문가가 적었던 데다 귀 성형 수술을 5000여건 한 검증된 실력 때문에 환자들이 나를 믿고 기다려 준다"고 말했다.

미디어 등을 통해 명의로 소문난 경우, 환자 적체는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 굴러가듯 더 불어나기도 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원무과장은 "환자들이 의사를 고를 때 예약이 많이 밀려 있는 의사를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며 "손님들이 북적거리는 음식점은 왠지 맛있을 것 같은 생각에 줄을 서는 한이 있더라도 더 몰려가는 심리와 유사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요즘에는 환자들이 질병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건강사이트나 환우회(患友會) 성격의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의사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서 어느 의사가 명의라고 꼽히면 그 의사에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박 교수 경우도 인터넷 카페에서 그의 명성을 접한 귀 기형 환자 부모들이 수술 적기인 초등학교 4~6학년에 맞춰 아예 유치원 때부터 아이를 데리고 진료실을 찾고 있다.

환자가 몰린 의사들은 주로 대학병원 교수들이다. 규모가 작은 병원의 전문의나 개원 의사는 대학병원과 맞서기 위해 환자들에게 발 빠른 치료를 제공하는 원스톱 시스템으로 승부하기 때문에 진료 대기 환자들이 적은 편이다.

반면 특정 의사를 위해 진료 역량을 쉽게 늘리기 어려운 대형병원에는 한 명의 의사가 명의로 소문나면 환자 대기가 줄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환자 대기가 심하다고 반드시 최고 실력 의사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수 있으며, 드물게는 신속 진료 시스템 부재가 진료 적체를 낳기도 한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라는 점도 특정 명의에게 전국의 환자들이 몰리는 요소이다. 의료신문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국장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과 직결된 의료 서비스 특성상 최고의 것만을 찾는 심리가 지역을 건너뛰어 명의를 찾게 한다"며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든, 어느 의사를 찾든 의료비는 똑같고 지역 간 의료 수준 불균형도 있기 때문에 특정 명의에 대한 환자 적체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