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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전문 21세기병원

청산(푸른 산) 2010. 8. 12. 08:39
외래 진료가 끝나는 오후 6시쯤 만나자고 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5시 40분. 대기실은 늦은 시간인데도 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전광판을 보니 제1신경외과(성경훈) 대기자 명단에 아직 6명이나 이름이 있었다. 전광판을 보며 우두커니 앉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진료는 정확히 6시 37분에 끝났다.

▲ 성경훈 대표원장이 밤 10시 수술환자를 돌보고 있다.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문을 열고 나온 성경훈 대표원장은 "미안하다"며 진료실로 안내했다. 악수를 하는데 그의 왼손이 눈에 들어왔다. 손톱들이 시커멓게 변색돼 있었고, 시뻘건 손가락과 손등은 쩍쩍 갈라진데다 여기저기 굳은 살이 박혀 있었다. 방사선 장비를 이용하는 내시경 수술을 하느라 생긴 '방사선 피부염'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껏 집도한 약 5만 건의 수술 중 내시경 수술은 8000건 정도인데 그 때마다 왼손이 방사선에 노출됐다. 처음엔 값비싼 보호장갑이 지급되지 않아 맨손으로 수술했고, 지금은 감각이 떨어질 것 같아 일부러 맨손으로 수술한다. 징그럽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훈장처럼 생각한다"고 했다.

21세기병원은 국내에서 척추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세 병원 중 하나다. 12명의 척추 전문의(신경외과 11명, 정형외과 1명)가 한 달에 300건 정도 수술을 한다.

성 원장은 "그렇다고 수술을 남발하는 병원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사실상 척추 분야 3차 병원 역할을 하므로 다른 병원서 검사·치료를 받던 환자들이 수술할 때가 돼 병원을 옮기는 경우가 많다. 그 바람에 요즘은 수술하기에 위험하고 까다로운 환자들이 많이 몰려 환자 당 평균 수술시간이 크게 늘어났고, '수익성'도 예전보다 나빠졌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우리들병원의 급속한 성장을 일궈낸 주인공 중 한 사람이다.

1991년, 신경외과 전문의를 따자마자 우리들병원에 합류해 작게 째는 '최소침습' 수술과 내시경 수술, 무수혈(無輸血) 수술을 정착시키는데 기여를 했다.

요즘은 표준 수술법으로 거의 자리를 잡았지만 당시만 해도 '상업적'이란 비난을 많이 받았다.

성 원장은 그러나 그런 비난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종전 방식대로 수술하면 입원기간이 오래 걸리므로, 병상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최소침습·내시경 수술에 집중했는데 그것이 왜 나쁘냐는 것이다. 성 원장은 "작게 째서 결과가 나쁘다면 문제지만, 작게 째는데도 결과가 좋아 빨리 퇴원하니 환자가 좋아하고, 그래서 돈이 많이 벌리니 의사도 좋은데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당시만 해도 신기술이라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술비가 비쌌지만 입원기간이 훨씬 짧아 환자 부담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성경훈 원장은 1999년 21세기병원을 개원했고, 병원은 10년 만에 연 3000건 이상 척추수술을 하는 전문병원으로 성장했다.

비결을 묻자 그는 "모든 의료진이 환자에 미쳐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 내시경 수술을 할 때마다 방사선에 노출돼 흉하게 변한 성경훈 원장의 왼손.
예를 들어 그는 출장 때를 제외하면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10시 회진을 돌고 퇴근할 때까지 병원 밖을 나가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저녁 약속을 할 때도 있지만 식사만 하고 병원으로 돌아온다. 한 술 더 떠 점심 식사를 밖에서 한 적은 지난 10년간 딱 두 번 밖에 없었다. 식사 때 손님이 찾아오더라도 진료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바로 돌려보낸다고 했다.

그는 "나는 CEO 원장이 못될 것 같다. CEO가 되려면 진료와 관련된 일들은 모두 위임해야 하는데 나는 직접 하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인다"고 말했다.

"병원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현재 상태로 만족하며 아무 욕심도 없다"고 했다.

척추분야에서 '21세기병원'이란 브랜드는 꽤 이름 값을 한다. 성 원장은 그러나 오래 동안 함께 근무한 의사들이 개원을 하면 무상으로 '21세기병원'이란 상호를 쓰게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2008년 개원한 서울 묵동 '강북 21세기병원'에게 로열티를 안 받는 것은 물론이고 병원 건물까지 지어주고 대금은 무이자로 분할 상환 받는다고 했다.

그는 "의사는 누구나 원장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원장이 베풀지 않고 움켜쥐면 의사들이 '반역의 마음'을 갖게 되고, 그런 의사는 진료에도 소홀하게 된다"며 "딸을 시집 보내는 마음으로 후하게 떼서 독립시켜주니 후배들도 '딴 마음' 먹지 않고 진료에만 몰두한다. 그것이 우리의 성공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문의를 딴 의사에게 2년간 척추수술을 집중 익히게 하는 '펠로(fellow) 제도'를 개원 직후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제자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들에게 병원을 하나씩 떼 줘 전국에 21세기병원이 들어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8시 20분쯤 끝났다. 함께 식사하러 나갈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선수(先手)를 쳐서 "약속이 있다"며 병원을 나서는데 배가 고프다 못해 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