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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위장병 전문병원(해정병원)

청산(푸른 산) 2010. 8. 12. 07:48

해정병원은 의료산업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좀 '구닥다리' 병원이다. 40년째 변화가 거의 없고, 돈을 벌려는 욕심도 부족해 보인다. 대부분의 전문병원이 최신 의술과 서비스를 다소 과장되게 선전하지만, 이 병원은 자기자랑에도 너무 서툴다. 광고는 물론이고, 돈 안 드는 홍보에도 별 관심이 없다. 심지어 그 흔한 홈페이지도 갖춰져 있지 않다.

취재를 하다 보니 맥이 빠졌다. 최규식 이사장은 "광고·홍보할 돈도 없거니와 있다 해도 자랑할 만한 최신 기술도, 특출한 서비스도 없다"고 말했다. "명성을 듣고 지방에서 오는 환자가 절반이 넘는다지요?"라고 물으니 "다 옛날 얘기죠, 지금은 의술이 평준화돼 대부분 서울 환자들입니다"고 했다. "난치성 위장병 환자가 많고, 완치율도 매우 높지요?"라는 질문엔 "글쎄요, 높다 해도 조금 높은 정도겠지요?"라고 말한다. 이사장 말만 들으면 기사 쓸 가치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위장병하면 해정병원을 떠 올린다.

병원은 외국인과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루는 인사동 거리 한 켠에 있다. 1969년 '최규식 내과'로 시작, 1971년 현재 위치로 자리를 옮겼으며, 이후 해정병원으로 개명(改名)했다. 7층 본관 건물과 3층 내시경 센터 건물은 공예품 가게와 화랑으로 빼곡한 인사동 거리에서 생뚱맞게 느껴진다. 당연히 주차도 불편하다. 그런데도 환자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 이사장은 "40년간의 믿음이 쌓였기 때문일까요?"라고 말한다.

해정병원은 우리나라 전문병원의 효시(嚆矢)라 할 수 있다. '성공한' 다른 전문병원 역사가 길어야 20년이지만 이곳은 올해로 만 40년이다. 한 의사가 내과 외과 산부인과 가리지 않고 온갖 환자를 다 진료하던 시절에도 세브란스병원 교수를 사직하고 개원한 최 이사장은 위장병 환자만 진료했다. 병원이 커지면서 내과의 다른 분야나 외과 등으로 진료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자연스런 추세였지만 "위장병 하나만 제대로 하기도 힘들다"며 지금껏 위장병만 고집하고 있다. 그는 "병원의 모든 의사들이 40년간 한 분야만 파고들었고, 위 내시경 검사 건수가 40만 건이 넘는다"며 "이제 위장병에 대해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했다. "40년간의 노하우를 왜 학술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나"란 질문에 "역량도 안 되는 곳에서 괜히 연구에 매달리면 진료에 소홀하게 되기 쉽지요. 연구는 대학에서 하고, 우리 같이 작은 병원은 환자 진료만 잘하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 해정병원 최광준 부원장이 위 내시경 검사를 하고 있다. 그는 위 내시경 검사만 15만 건 이상 시행했다.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최 이사장의 진료 원칙은 신속·정확·정직이다. 이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한 예로 1983년, 모든 내시경의 '1대1 소독'을 위해 당시 돈으로 3억 원을 투자했다. 최 이사장은 "지금도 1대1 소독을 않는다고 야단들인데 당시로선 대학병원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이지요. 우리가 1대1 소독한다고 선전하면 그렇게 하지 않는 병원이 타격을 입을까봐 자랑도 못했지요"라고 말했다. 또 환자가 오면 언제라도 기다리지 않고 내시경을 할 수 있게 장비들을 필요 이상 들여 놓았다. 2004년엔 무리해서 내시경 센터도 세웠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1993년부터 아버지 최 이사장과 함께 근무하고 있는 아들 최광준 부원장은 "돈만 벌면 환자를 위해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투자를 해서 조금 불만이었는데 이젠 아버지가 이해가 됩니다"라고 말했다.

최 부원장은 위 내시경 검사는 누가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병원 40만여 건의 위 내시경 시술 중 혼자 15만 건 이상을 담당했다. 예를 들어 궤양이나 암은 쉽게 진단 가능하지만 정상이거나 위염이 있는 위 점막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치료계획을 세우는지는 상당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부원장은 "매일 위 내시경만 들여다보면 환자의 식생활 습관이 어떤지, 언제부터 위장병이 있었는지, 헬리코박터균 치료를 몇 번 해서 몇 번 실패했는지, 항생제를 쓰면 치료가 잘 될 것인지, 앞으로 위장병이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지 등을 대강 알 수 있다"며 "건방진 소리 같지만 이제 위를 보면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얼추 비슷하게 알아낸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많은 의사가 암이나 궤양만 없으면 위염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그래선 안되지요. 위암 치료 잘 하는 병원은 많은데 위염이나 소화불량 전문병원도 하나쯤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이 병원 환자 중에선 오래된 단골들이 많다. 아버지, 아들, 손자가 3대째 병원을 찾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최 이사장은 "10년 20년 다닌 사람은 '단골' 명함도 못 내밀지요. 그렇게 거쳐간 사람들이 자꾸 입 소문을 내 주니 난 참 행복한 의사인 셈이지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2세 경영인'인 최 부원장에게 "지명도가 충분하니 이제라도 병원을 좀 더 키우고 진료영역을 확장시킬 계획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이나 퓨전 음식점들이 요즘 인기인데, 그렇게 새 맛에 도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똥찬' 설렁탕 한 그릇의 맛을 지켜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출처 : 부산 나그네 쉼터
글쓴이 : sun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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