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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새 길을 만나다..성산·오조 지질트레일

청산(푸른 산) 2015. 6. 11. 07:16

 

 

제주도 동쪽 끝, 성산일출봉을 끼고 도는 지질트레일이 열렸다. 화산과 바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흐르는 이 길에는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제주의 보석 같은 풍경들이 숨겨져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살아 숨 쉬는 화산섬 제주는 걷는 것만으로도 다채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180만 년 전부터 1,000년 전까지 화산 활동의 흔적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 지질학의 보고.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제주에 네 번째 지질트레일이 열렸다.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은 제주 제1경으로 꼽히는 성산일출봉과 성산리, 오조리를 돌아보는 길이다. 제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작은 마을들과 갖가지 독특한 지형들이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그동안 놓쳤던 일출봉의 면면과 그 안에서 삶을 일궈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오조해녀의 집에서 출발해 식산봉과 오조리, 고성리, 성산리를 거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트레일 코스는 총 8.3km다. 다시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코스로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좋다. 보통 걸음으로 걸으면 2시간 정도, 중간에 성산일출봉에 오른다면 1시간 정도가 더 걸린다. 놀멍쉬멍, 찬찬히 둘러보고 살펴보며 걸어야 제맛이니 시간은 넉넉하게 잡는 것이 좋다.

신비로운 마을 오조리오조해녀의 집에서 시계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식산봉을 거쳐 오조리를 가로지르게 된다. 성산일출봉과 마주보고 있는 식산봉은 해발 60m의 작은 오름이다. 작다고 우습게 볼 게 아니다. 희귀식물인 황근의 국내 최대 자생 군락지로 맥문동, 율초 등의 약초 군락과 상록활엽수림이 넓게 분포돼 숲을 이루고 있다.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성산10경’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식산봉을 지나 오조리 마을로 들어서면 용천수 ‘족지물’이 나온다. 화산섬인 제주에서 물은 매우 귀한 것이었다. 비가 많이 와도 바다로 흘러가 버리거나 땅에 스며들어 때를 가릴 것 없이 물과 사투를 벌어야 했다. 때문에 땅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는 제주민들에게 아주 고마운 것이었는데, 주민들은 이를 ‘물통’이라 불렀다. 마을 어귀, 대나무와 동백나무가 들어차 있는 둔덕 아래로 작은 돌들을 쌓아 둘러쳐놓은 ‘족지물’도 그중 하나다. 식수와 빨래, 목욕물로도 사용했는데, 위쪽은 여자탕, 아래쪽은 남자탕으로 나뉘어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오조리는 성산 앞바다 일출봉 너머로 해가 떠오르면 가장 먼저 햇살이 닿는 마을이다. 눈앞에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이곳은 평화롭고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 호젓한 마을길을 걷다 보면 나오는 ‘오조리 쉼터’도 꼭 들러보자. 잠시 땀을 식히며 버스킹 공연과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1 진분홍색, 감청색 리본과 함께 길을 안내하는 지질트레일 이정표. 2·3 탐방객들의 휴식 공간 오조리 쉼터.
화산섬의 기록 튜물러스오조리 마을을 빠져나오면 다시 한번 신비로운 경관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화산 활동의 흔적인 튜물러스와 밭담이다. 제주 해안가 곳곳에는 이 섬이 화산섬임을 말해주는 흔적들을 만날 수 있는데, 제각기 모양을 달리하는 크고 작은 검은 바윗덩어리들이 제멋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튜물러스는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의 표면이 굳어 완만한 구릉 형태를 이룬 지형으로 이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다.

검은 돌로 낮은 담을 이루고 있는 밭담도 제주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다. 화산섬의 척박한 토양을 지닌 제주에서는 농사짓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밭을 조금만 일궈도 여지없이 돌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제주민들은 이렇게 땅에서 나오는 돌들을 한편에 쌓아뒀는데, 구멍이 숭숭 뚫린 밭담은 거센 바람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돌들의 아귀를 서로 맞춰 쌓았기에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봄이면 노란 유채꽃과 어우러져 그려내는 한 폭의 그림 같은 밭담의 풍경에는 제주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터진목 4.3 유적지와 일제 동굴진지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은 제주의 신비로운 지질 환경뿐 아니라 역사의 흔적도 만나볼 수 있는 길이다. 성산리는 본래 제주 본섬에 딸린 작은 섬이었다. 썰물 때면 드러나는 가느다란 모래톱이 본섬과 성산리를 이어주곤 했는데, 물때에 따라 바닷물로 터지곤 했던 이 길목을 ‘터진목’이라 불렀다. 이곳은 한국 현대사에 비극적인 사건으로 꼽히는 4.3 사건 당시 성산 지역 주민들이 집단으로 학살당한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진 곳이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연륙 공사로 이어지면서 지금은 넓은 도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성산일출봉으로 가기 전 한 군데 더 들를 곳이 있다. 바로 일제 동굴진지 유적지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군은 연합군과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기 위해 제주 전역에 수많은 동굴진지를 구축했다. 당시 성산일출봉이 일본 해군 자살특공기지로 쓰였고, 이곳 동굴진지는 폭약을 실은 특공소형선을 감춘 비밀기지였다. 당시 겪었을 제주민들의 고초를 생각하니 눈이 시리도록 푸른 제주 바다가 더욱 시리게 느껴진다.

불과 물의 합작품 성산일출봉

일제 동굴진지 유적지에서 나오면 바로 성산일출봉 입구에 다다른다. 성산일출봉은 약 5~7천 년 전 제주도의 수많은 분화구 중에서도 드물게 얕은 바닷가에서 폭발해 만들어진 오름이다. 해발 180m의 이 산은 수천 년 동안 파도와 바람을 만나는 사이 절벽이 깎이면서 사발 모양의 분화구가 남았고, 오늘날의 모습이 됐다. 우리가 만나고 있는 성산일출봉은 불과 물이 만들고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합작품인 셈이다. 기암괴석을 오르며 마주치는 풍경들, 정상에서 마주하는 탁 트인 제주 바다는 가슴을 뻥 뚫어줄 만큼 장쾌하다.

성산일출봉을 지나 만나는 자연 포구 ‘오정개’에서는 성산일출봉의 북향을 볼 수 있다. 갖가지 들꽃과 어우러진 이곳의 풍경 또한 아름답다. 잠시 걸음을 멈춰 쉬어가기에도 좋은 장소다. 시인 이생진 시비 거리와 마지막 코스인 성산항과 우도를 지나 다시 오조해녀의 집으로 돌아오면 트레일이 마무리된다. 현재 성산항·우도에서 테우리동산 부근 해안길은 정비 중이다. 9월까지는 오정개에서 이어지는 임시 코스를 이용해야 한다.

성산·오조 지질트레일

‘지질트레일’이라고 쓰인 진분홍색과 감청색 리본이 길을 안내한다. 그늘이 거의 없으니 자외선 차단제와 모자 혹은 양산을 준비하자. 트레일 코스 중 주요 포인트에선 지질마을 해설사 교육을 수료한 마을주민들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길이성산일출봉 트레킹 1.2km 포함 총 8.3km)

소요시간3시간 30분~4시간

오조해녀의 집 → 식산봉 → 용천수 ‘족지물’ → 오조리 마을회관 → 튜물러스·밭담 해설 포인트 → 철새도래지 해설 포인트 → 터진목 4.3 유적지 해설 포인트 → 일제 동굴진지 유적지 →성산일출봉 입구 → 오정개 → 시인 이생신 시비 거리 → 성산항·우도 해설 포인트 → 오조해녀의 집

<■글&사진 / 노정연 기자 ■사진 제공 / 제주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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