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전문적인 방한용품이 필요했다.
겨울의 시작, 갈 길은 아직도 멀다
마케도니아(Macedonia)와 알바니아(Albania) 국경지대에 위치한 오흐리드 호수(Lake Ohrid)는 해발 695m에 위치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수심이 깊은 호수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의 풍경에 시선을 뺏긴 것도 잠시, 긴 오르막 길에 지친 것인지 아니면 차가운 산 속 기온 때문인지 편도가 부어 오른 것 같았다. 자전거 여행 중에 항상 유의해야 할 것이 바로 건강이다. 자칫 잘못하면 감기에 걸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오흐리드 시내를 향해 내려갔다. 오흐리드는 그리 큰 마을은 아니었지만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라 여행자 숙소가 즐비했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숙소를 찾기 위해 시내를 돌아다니던 중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크기에 압도될 수 밖에 없었다. 호수 주변으로는 유럽 어디에도 볼 수 있는 예의 붉은 지붕을 가진 집들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어이~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어? 어떻게 여기에 계세요?"
크로아티아(Croatia)와 몬테네그로(Montenegro)를 함께 여행했던 마크와 제니 부부였다.
루트가 달라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우연히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가웠다.
같은 숙소에 짐을 풀고 그간의 여행 이야기로 회포를 풀었다.
길이 없는 산중으로 들어갔다가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바람에 자전거를 탈 수 없어 고생했던 이야기, 알바니아의 시골에서 물이 새는 배에 탔다가 고생한 이야기 등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던 그들에게 질세라 우리도 그간 있었던 일들을 약간의 과장을 섞어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웃고 떠드는 순간에도 우리는 곧 다가올 겨울에 대한 걱정을 놓을 수 없었다.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언 계절에 대한 경험이 없는 우리에게 추위는 큰 근심거리였다.
마크와 제니 부부는 한 겨울에도 끄덕 없는 침낭이 있었고, 몇 주 뒤 그리스에 도착하면 여행을 마칠 예정이었기에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 반해 우리는 더 추운 내륙 지역을 관통해야 하는 데다가 겨울을 이겨낼 만한 장비가 전무한 상황이라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대신 가격대가 저렴해 부담 없이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 과연 이 장비들로 겨울 자전거 여행을 무사히 해낼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마크, 제니 부부와 작별인사를 나눈 뒤 다시 여행길을 나섰다.
"서울은 지금 한 여름이지만, 우리가 발칸 반도를 여행했던 시기는 겨울이 성큼 다가오던 늦가을이었다. 예상치 못한 한파로 힘든 시간이 이어진 반면 따뜻한 인연은 끊이지 않았다. 크로아티아에서 만났던 마크와 제니 부부를 비롯해 우리와 비슷한 루트로 여행 중이던 펠릭스, 자전거 마니아 지키차, 마케도니아 유명 자전거 여행자 만스 아저씨까지. 인연이 깊어질수록 여행도 깊어만 갔다."
마케도니아에서의 첫 행선지는 마브로보 국립공원(Mavrovo National Park)이었다.
구석구석 여행할 생각으로 일부러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국립공원을 선택한 것은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산악 지형이기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구간이 많았지만 아름다운 계곡과 한적한 도로,
친절한 현지인과의 만남이 우리를 즐겁게 했다. 이와 반대로 날씨는 점점 더 추워져 갔다.
마브로보에 도착했던 날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한파가 몰아쳤다.
가장 시급했던 문제는 추위를 피해 하룻밤을 보낼 곳을 찾는 것이였다. 모텔은 영업을 안 한지 꽤 오래 된 듯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었고, 스키 리조트는 너무 비싸 머물 수가 없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식당에 들어가 끼니를 때우며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에서 만났던 마크와 제니 부부를 오흐리드에서 다시 만났다.
마크의 신기와 같던 지도 보는 솜씨가 반가웠다.
"오늘 너무 추운데? 텐트 치면 안 될 것 같아."
"그러게. 일단 식당은 따뜻하니까 밥도 먹고 좀 쉬면서 잘 곳을 생각해 보자."
자전거를 타고 온 우리가 대견해 보였는지 옆 자리 세르비아 아저씨가 밥값을 계산해 주는 등
혹시나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자정이 가까워오도록 숙소를 구할 수는 없었다.
식당도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고,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이 추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야영을 해야 했다. 조금이나마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폐쇄된 모텔 입구에 텐트를 치고, 입을 수 있는 옷을 최대한 껴입은 뒤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혹시라도 동상에 걸릴까 식당에서 뜨거운 물을 구해 물통이란 물통에 죄다 담아 침낭 속에 넣었다.
덜덜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간신히 잠이 들라치면, 식어버린 물에서 한기가 올라와 잠에서 깨기 일쑤였다. 그러면 다시 물을 끓여 침낭에 넣기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결국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밖에 내 놓았던 시계의 온도계를 확인한 결과 밤 사이 최저 기온은 영하 11도를 기록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지역은 마케도니아에서도 가장 추운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점점 더 추워질 겨울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임시방편이 아닌 제대로 된 장비와 계획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다. 겨울은 이제 시작일 뿐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었으니 말이다.
*코차니의 스타, 만스! 테마가 있는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진정한 자전거 여행가다.
'자전거 여행' 아래 뭉친 우리
예전에 '카우치 서핑(www.couchsurfing.com)'이라는 웹사이트를 소개한 적이 있다.
현지인으로부터 숙소를 제공받거나 관광 정보를 얻는 등 다양한 문화교류를 통해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유용한 사이트다.
이번에는 그와 비슷하지만 다른 매력을 가진 '웜 샤워즈(www.warmshowers.org)'를 소개해볼까 한다. 회원 수나 규모 면에서는 카우치 서핑에 미치지 못하지만, 따뜻한 샤워를 제공하는 자전거 여행자들의 커뮤니티라는 점만으로도 끈끈한 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갑자기 웜 샤워즈를 소개하는 이유는 마케도니아에서의 웜 샤워즈 경험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스팁(Stip)에 살고 있는 지키차가 첫 번째 주인공인데, 어린 나이에 비해 자전거 여행과 암벽등반 등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친구였다.
우리가 도착한다는 소식에 꽤 먼 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마중을 나온 그는 자신의 집과 좀 떨어진 별채에 우리를 묵게 하고, 샤워와 빨래 등 필요한 부분을 척척 해결해줬다. 역시 같은 자전거 여행자라 그런지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뛰어난 요리 실력을 지닌 그의 어머니 덕분에 정통 마케도니아 음식들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비록 이틀 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덕분에 온천도 즐기고 클럽에 가서 친구들도 사귀는 등 현지 친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 목적지는 코차니(Kochani)였다. 그 곳에는 만스라는 호스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자전거 여행자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그도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마중 나온 것일까?
"혹시… 만스?"
"그게 누구죠?"
"아… 죄송합니다."
그의 이름은 펠릭스, 스위스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였다. 멋쩍은 첫 만남이었지만 비슷한 루트로 여행하고 있던 터라 커피 한 잔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머지 않아 이스탄불에서 재회를 약속하며 짧은 만남을 마쳤다.
이제는 정말 만스를 만날 차례다. 코차니에 도착하자마자 주유소 직원에게 길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를 안다며 호들갑이다. 친분은 없지만, TV에서 자전거로 여행하는 모습을 봤다는 것이다. 이 동네에서만큼은 꽤 유명 인사인가보다. 잠시 후 직접 만난 만스 아저씨는 큰 키에 부리부리한 외모와는 달리 실없는 농담을 즐기는 수더분한 사람이었다. 여행자들이 자주 머무는지 집에는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메모나 선물이 많았고, 러시아에서 온 배낭 여행자도 이미 집에 머물고 있었다.
사실 그는 방송에까지 소개될 정도로 수 차례 자전거 여행을 떠난 베테랑이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집(마케도니아)에서부터 베이징까지 자전거로 여행하고, 교황을 만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바티칸시국(이탈리아 로마 내 위치)을 가는 등 테마가 있는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진정한 여행가라고나 할까.
그를 만날 당시에도 런던 올림픽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영국 런던행을 계획했으나 불발에 그쳤다고 한다. 곧 태어날 만스 2세 때문이라는데, 겉으로는 아이 때문에 자전거 여행도 못 하게 되었다며 우는 소리를 했지만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국적도 나이도 성격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자전거 여행이라는 단 한 가지 공통 분모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둘도 없이 친한 친구가 되는 일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펠릭스, 지키차, 만스 세 친구들은 아직까지도 서로 안부를 물으며 다음 여행을 함께 하자고 의기투합하는 끈끈한 사이다.
단순히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인연이 언제 어떻게 만나도 반가운 관계가 되는 것만큼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과의 시간이 떠오르며 다시금 그 시간을 여행하고 있는 듯한 기분 좋은 추억에 빠져든다.
글/사진: 이성종, 손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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