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렇게 익어가는 들녘. 가을은 마음을 흔드는 갈바람과 함께 찾아온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픈 마음은 여자나 남자나 매한가지.
단풍이 산기슭을 물들이면 가슴도 붉어질 것만 같다.
혼자여도 좋고 함께여도 좋은 가을날의 여행. 충청북도 보은은 가을이 가을다운 곳이다.
그곳은 노란색 크레파스로 들판을 그리고 파란색 크레파스로 하늘을 그려놓았다.
유난히 아름다운 가을의 서정이 묻어 있는 그곳으로 가을 여행을 떠나보자.
보은의 풍요로운 들녘.
속리산 국립공원 자연관찰로 오리숲
보은에서 속리산을 빼고 여행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속리산국립공원은 태생적으로 등산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은혜로운 산이다. 그
이유는 속리산 주차장에서부터 법주사 입구까지 이르는 '오리숲' 때문이다.
오리숲은 두 갈래다. 먼저 잘 닦아놓은 숲길이 있다.
걷기에 좋아 유모차를 밀고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구간이다.
어린 자녀와 함께 가을 냄새 짙은 숲길을 걷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은 축복받은 존재다.
길목마다 벤치가 놓여 있어 쉬엄쉬엄 걷기에 좋다.
혼자여도 충분히 좋은 이유는 귓가를 간질이는 가을바람 소리와 월동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귀여운 다람쥐 친구가 있어서다. 그뿐 아니다. 숲에서 오감을 곤두세우면 평소에 듣지 못하던, 보지 못하던, 알지 못하던 자연의 소리를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다.
비록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서로 다른 나무가 잎을 틔우고 자라나 이제 가을을 맞아 종류대로 열매를 맺고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이 모든 자연 만물이 인간을 위한 선물임에 감사한 마음이 넘쳐난다.
다른 길은 속리산 계곡에서 이어지는 사내천을 따라 걷는 자연관찰로다.
흙길로 조성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연관찰로에는 숲 이야기, 곤충 이야기 등 16개 주제로 제작된 해설판이 있다.
아빠도 나름 자연 선생님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안내문을 읽고
가족과 함께 자연 공부를 하면 어떨까. 예술 감성을 일깨우는 조각상들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소리 없이 성큼 다가온 가을처럼 메마른 감정에 작은 울림을 주는 조각상 하나를 찾아
감상의 재미에 빠져볼 법하다.
1 속리산의 구절초가 가을을 알린다. 2 오리숲은 걷기 좋은 숲 속 산책길이다.
보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
오리숲을 돌아본 뒤에는 보은의 상징인 정이품송을 빠뜨리지 말자.
어딜 가나 꼭 챙겨봐야 할 것이 있게 마련인데 정이품송이 그렇다.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정이품송은 1464년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가지에 걸릴까 염려해 "연(輦) 걸린다"라고 말하자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려 임금이 무사히 통과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이유로 세조는 소나무에게 정이품 벼슬을 하사했다고 한다. 나무가 병들기 전에는 완벽한 삼각형이었는데 지금은 한쪽 면이 병들어 완전치 않다.
서원리에 가면 천연기념물 제352호로 지정된 6백 년 이상 된 소나무가 있다.
높이가 15m가 넘고 둘레가 6m에 이르는 거목이다. 정이품송이 곧게 자란 데 비해 밑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기 때문에 암소나무라 부른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정이품송의 정부인 소나무로 알려졌다.
나무에게도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고 싶은 마음인가 보다. 정부인 소나무 옆으로 개울이 흐르고 반석들이 널려 있어 쉬어가기에 적합하다.
1 보은의 상징인 정이품송의 우아한 자태.
2 주민들의 인심이 맺어준 인연, 정이품송 부인송.
3 자연 학습을 위해 둘러볼 만한 솔향공원의 소나무홍보관.
4 솔향공원과 둘리공원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도 있다. 둘리공원과 솔향공원이 그곳이다.
솔향공원에는 최근 체험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스카이바이크가 있다.
스카이바이크는 높이 2~9m 구간에 1.6km의 체험 코스로 평지에서는 자전거 페달을 이용하고
오르막 구간에서는 전기동력을 이용한다.
덕분에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솔향공원 내에 있는 4D영상관, 소나무생태전시관, 식물원 등을 함께 돌아보면 좋다.
1 전체 길이가 1.6km가 넘는 삼년산 성곽둘레길.
2 삼년산성에서 바라본 보은의 황금 들녘이 넉넉함을 안겨준다.
1천5백 년 세월을 밟고 보은 시내를 내려다보다, 삼년산성
삼년산성은 보은의 명소 선병국 가옥에서 보은군청 방향으로 약 8km 지점에 있다.
325m 높이의 오정산 한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470년(신라 자비왕 13년)에 축성하기 시작해
만 3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해 삼년산성이라 부른다.
또 축성 방법이 골짜기를 감싸면서 쌓았다 해서 포곡식 산성이라고도 부른다.
과거 성 안에는 논밭과 민가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빈터로 남아 있다.
반듯반듯한 돌은 옛것이 아니라 복원하면서 쌓은 요즘 돌이다.
하지만 성곽 위에 깔려 있는 납작한 판돌은 대부분 옛 돌이라고 하니,
1천5백 년의 세월을 밟고 서서 보은 시내를 내려다보는 그 맛이 일품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보은의 모습이 화려한 도심의 풍광과 사뭇 다르다. 인공적인 시설보다 논과 밭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들녘은 황금물결을 이룬다. 하늘에는 파란색이 그러데이션돼 쾌청하기 그지없다. 가을이 가을다운 순간이다.
성에서 가장 높은 곳은 13m, 폭은 8~10m다. 성곽을 따라 전체 길이가 1,680m에 이른다. 큰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산책하듯 걷기에 알맞은 거리다. 현재 성문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성문의 흔적만 남아 옛 시절을 반추하고 있다.
첩첩산중으로 떠나는 드라이브의 묘미
속리산에서 구병아름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유난히 구불구불한 산길이다.
말티재를 지나야 하기 때문. 구불구불 12굽이나 되는 가파른 고갯길은 고려 태조가 속리산에 올 때 닦은 길이라 전해진다.
포장이 잘 돼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창문을 열고 달리면 소나무의 고장답게 솔 향이 차 안 가득 들어온다. 운전 중에 이따금 보이는 속리산 능선은 가슴 깊은 곳까지 뻥 뚫어줄 만큼 시원하다. 솔향공원에서 출발해 30분 정도면 구병아름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1 구병아름마을은 주차장도 솔숲의 은혜를 입는다.
2 속리산 국립공원을 가기 위한 첫 관문인 말티재는 12굽이나 되는 가파른 고갯길이다.
3 외가인 구병아름마을에 놀러 온 아이가 보은 속리산 복숭아를 맛보고 있다.
구병아름마을은 산 좋고, 물 좋은 그리고 공기까지 좋은 곳으로 예부터 장수마을으로 통한다.
마을에는 민박집이 여럿 있다. 이런 산골까지 와서 누가 자고 갈까? 특별한 볼거리가 있을까?
궁금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면 낯익은 풍경, 익숙한 듯한 장소, 소소한 삶의 흔적들이 고향 마을을 찾은 것처럼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겹겹이 둘러쳐진 산들 덕분에 일제강점기에도 징집당한 사람이 없고,
한국전쟁 때도 무사했다고 한다. 구병아름마을은 술 익는 마을로도 유명하다.
집집마다 10여 가지의 가양주를 빚어 귀한 손님에게 대접한다고. 마을 대표 술은 송로주다.
솔잎을 주재료로 담근 술로 충북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됐다. 정이품송의 고장 보은에, 솔잎으로 담근 송로주라니, 가을의 운치가 더욱 깊어지는 느낌이다.
원정리 느티나무와 임한리솔숲공원
보은의 가을은 특별하다. 고고한 나무와 어우러져서 더욱 그렇다.
원정리 느티나무는 소지섭, 김하늘, 최민수 등 톱스타들이 총출동한 드라마 '로드 넘버원'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특히 황금 들녘과 어우러진 풍광이 절대 백미다.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딱 떨어지는 엽서 같은 사진을 원한다면 이곳이 제격. 느티나무의 수령이 5백 년이 넘는다.
내비게이션에 원정삼거리 혹은 원정교를 검색하면 된다.
1 목가적인 원정리 느티나무.
2 안개와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 임한리솔숲공원.
임한리솔숲공원은 너른 면적에 소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진 소나무 숲 공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외딴 공원이지만 사진가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곳이다.
특히 가을에 많이 찾는다. 소나무 숲 촬영지로 유명한 경주 삼릉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그 조건은 이렇다. 대단위 면적일 것, 소나무가 구불구불하게 자라 특별한 기운이 전해질 것, 이른 아침에 안개가 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할 것 등인데, 임한리솔숲공원은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다. 내비게이션에서 보은군 탄부면 상장리에 있는 상장삼거리를 찾으면 된다.
Tip 보은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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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에서 먹을 것
용궁식당(043-542-9288)은 불향이 밴 촉촉한 오징어볶음과 매운 닭발볶음이 일품이다. 김천식당(043-543-1413)은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순대전골 맛집. 푸짐한 양 덕분에 가족 여행객들에게 권할 만하다. 마무리는 볶음밥으로 하면 좋다.
보은에서 머물 곳
속리산 국립공원 끝자락에 위치한 국립속리산 말티재자연휴양림(043-543-6282)은 속리산 국립공원을 가기 위한 첫 관문인 말티재에 위치해 있다. 충북알프스자연휴양림(043-543-1472)은 2010년에 문을 열어 시설이 좋은 편이다. 고택에서 특별한 저녁을 보내고 싶다면 선병국 가옥(043-543-7177)이 좋다. 다만 방이 많지 않아 아쉽다. 그랜드호텔(043-542-2500)과 힐파크(043-543-1996)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인증한 굿 스테이 숙박업소다.
여행 문의
삼년산성 충북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산 1-1 속리산 국립공원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84 043-542-5267, songni.knps.or.kr 보은군청 문화관광과 043-540-3391~5 보은군 관광안내소 043-542-3006
임운석 작가의 코스 제안
● 아이를 동반한 가족을 위한 코스
속리산 오리숲→정이품송→솔향공원, 둘리공원
● 중년 부부의 데이트 코스속리산 오리숲→정이품송→구병아름마을→임한리솔숲공원
● 활동적인 신혼부부를 위한 코스속리산 오리숲→정이품송→원정리 느티나무
profile 임운석은…
평생 여행만 하며 살자고 한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니던 외국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전업 여행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20대 때는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신인상 후보에 올랐으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원으로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작가, 국내 아웃도어 전문 업체의 로드플래너와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빛과 바람 그리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http://roomno1.blog.me/)'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최고다! 섬 여행」, 「대한민국 사계절 물놀이사전」, 「여행의 로망 캠핑카 스토리」를 썼다.
<■글&사진 / 임운석(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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