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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만큼 아름다움으로 보상받는 길, 지리산 둘레길

청산(푸른 산) 2014. 10. 3. 18:12

 

힘든 만큼 아름다움으로 보상받는 길,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의 난이도를 상중하로 나눈다면 어천~운리 구간은 상에 해당한다. 처음부터 가파른 등산 구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리마을의 단속사지에 이르면 모든 고단함이 한꺼번에 씻겨 나간다.

경호강을 끼고 있는 어천마을은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어천마을에서 아침재까지의 2km 구간은 마을을 통과하는 길이지만 언덕이 제법 가파르다. 길을 오를수록 경호강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옹기종기 들어선 민가와 펜션들이 정겨운 모습을 드러낸다.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드는 길도 콘크리트로 포장된 가파른 구간이다. 아침재에 올라서 뒤돌아보면 저만치 아래로 고즈넉한 어천마을이 보인다.

이제부터 길은 비포장 임도로 이어진다. 임도가 끝나갈 무렵 둘레길 안내판은 왼쪽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둘레길 중 가장 힘든 구간이 시작된다. 원래는 웅석산 등산로였으나 둘레길이 만들어지면서 둘레길로 이용되는 구간이다. 길은 오르고 또 오르기만 한다. 이마와 등줄기에서 땀이 흐르고 숨소리도 거칠어진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울창해 한여름에도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지만 더위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좌우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등산로는 몇 분마다 한 번씩 쉬지 않고는 도저히 오르기 힘들 만큼 가파르다. 숨을 몰아쉬며 힘든 구간을 빠져나오면 꽉 막혔던 하늘이 환하게 밝아온다. 갑자기 나타나는 널찍한 공간은 웅석산 하부헬기장이다. 벤치가 놓여 있어 잠시 쉬면서 간단하게 요기하기에 좋다.

웅석산 하부헬기장부터는 다시 임도인데, 평지 아니면 내리막이라 발걸음을 떼기가 한결 편하다. 임도의 첫머리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허리까지 닿는 우거진 수풀은 곱게 빗질한 듯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멀찍이서 좌우로 굽은 길은 아련한 느낌을 준다. 길과 바람과 풀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노라면 어느새 길은 한참을 지나 있게 마련이다. 눈앞에 깊은 협곡이 펼쳐진 지점에 이르면 웅장한 산세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산봉우리를 넘는 운해라도 만나는 날이면 그야말로 장관이 펼쳐진다.

이후의 임도는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웅석산 하부헬기장에서 6km 지점에 이르면 민가가 보이는데, 출발지인 어촌마을 이후 처음 만나는 집이다. 이곳을 지나면 곧 삼거리이고, 둘레길은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야 한다.

가파른 내리막길 끝에는 탑동마을이 자리한다. 탑동마을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 2개는 지금은 사라진 단속사의 예전 모습을 짐작케 해주는 흔적이다. 예전에는 이 절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아침저녁으로 절간에서 쌀을 씻은 쌀뜨물이 10리 밖에까지 흘러갈 정도였다고 한다. 이처럼 지나친 속세와의 인연을 끊으려고 세상과의 인연을 끊는다는 '단속(斷俗)'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는데, 이젠 석탑만 남아 사라진 단속사와 속세의 오랜 인연을 겨우 연결한다. 동탑과 서탑으로 이루어진 단속사지 삼층석탑은 균형미와 안정감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신라석탑이다. 탑동마을을 벗어나면 1001번 지방도에 이른다. 도로를 따라 600m쯤 걸으면 종착지인 운리마을에 도착한다.(글. 박동식)

출처: 대한민국 다시 걷고싶은 길 ㅣ 저자: 한국여행작가협회 ㅣ 출판사: 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