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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가 세워진 골목 /김경주 다세새 연립주택 아래 노인은 조금 남은 손톱으로 벽에 붙은 햇살을 긁어 본다 아이들이 뿌연 입김을 물고 잠든 새벽 전신주가 밤새 창마다 붙인 불빛 한 점씩 떼고 있다 노인은 포장을 걷고 목마의 귀를 흔들어 주며 창문에 촘촘히 맺힌 그림자를 바라본다 조용히 이불을 들추고 어둠 속에서 양말을 신고 있는 가장의 출근이 보풀거리는 벽지처럼 방안에 조용히 부스럭거린다 천막을 뚫고 날아오르려는 아이들의 함성이 봄꽃 마냥 펑펑 피어오르면 노인도 목마의 따스한 잔털에 엎드려 메콩강 지나 아내가 잠들어 있다는 골고다 언덕까지 달린다 동전소리 잘그락 잘그락 흔들릴 수록 꿈결은 등 짝에 몽골몽골한 땀방울 하나씩 매단다 삶은 늘 힘차게 삐걱거리면서 시작됐다 아이들은 어디까지 길들을 엮다가 내려오는 것일까 페인트 한 조각 풀썩 떨어진 말발굽이 뜨겁다 개숫물처럼 햇살이 동네를 조용히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노인은 아까부터 목마를 기웃거리던 터진 소매 하나 안장에 앉힌다 밤까지 용수철이 풍성하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청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