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서(書) - 유 치환(1908~1967)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존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