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철강사 쓴 '철의 사나이' 눈감다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에게 철은 곧 국가였다. '철의 사나이'라는 수식어는 국내 제일의 철강사 포스코(구 포항제철)의 첫번째 수장으로 오늘날 한국 철강업을 일군 박 명예회장이었기에 붙은 별칭이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는 당대 35년 동안 연간 조강생산 800만t을 이뤘지만 박 명예회장은 25년간의 사장 및 회장 재임기간 중 2100만t을 달성했다. 그가 첫 삽을 뜬 포스코는 오늘날 세계 5위, 연간 조강생산량 3540만t에 달하는 굴지의 철강사로 성장했다.
박 명예회장은 1968년 포항종합제철의 사장을 맡은 후 1992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민영화를 거치며 포항제철이 포스코로 바뀌고 새로운 전문 경영인들이 등장했지만, 포스코에 대한 그의 애정은 늘 변함이 없었다.
올초 포스코 청암재단 시상식을 찾은 박 명예회장은 포스코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뒤에 있는 정준양 회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정 회장이 잘하고 있다"며 믿음을 드러냈다. 9월에는 과거 포항에서 자신과 함께 근무했던 퇴직직원들과 19년만에 재회하는 자리를 마련해 "청춘을 바친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우리의 추억이 포스코의 역사와 조국의 현대사 속에 묻어 있음을 잊지 말자"고 언급키도 했다.
박 명예회장이 포항제철소 건설을 진두지휘하기 전, 국내 철강산업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한국 정부가 철강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최초의 종합제철 건설 계획을 세운 것은 1958년 자유당 정부 시절이었으나 연간 선철 20만t 생산을 목표로 했던 이 계획은 자금 부족, 정국 혼란 등으로 무산되고 말았으며 결국 다섯 차례에 걸친 제철소 건설 시도는 모두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종합제철 건설 계획이 보다 구체화된 것은 1961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부터다. 정부는 철강산업이 다른 산업에 기초 소재를 제공하는 산업으로 빈곤에서 탈피하고 자립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제일 먼저 기초를 다져야 할 필수 산업임을 인식하고, 조국 근대화라는 국가적 비전을 이루기 위해 종합제철건설을 구상했다. 이 특명을 받은 자가 바로 당시 대한중석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중이던 박 명예회장이다.
박 명예회장은 1968년 4월 1일 34명의 임직원들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의 창립식을 가졌다. 그리고 1970년 4월, 경북 포항 영일만에 조강연산 103만t 규모의 1기 설비 착공에 돌입했으나 공사는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다. 건설 경험도, 기술도 없던 터라 더욱 쉽지 않았던 도전이었다. 박 명예회장은 "혈세로 짓는 제철소 건설이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해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며 입술을 깨물고, "국가숙원사업에 동참한 긍지와 사명감을 갖자"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불퇴전의 각오로 매진하자는 리더의 강력한 의지는 현장에도 그대로 녹아들었다. 결국 예정보다 1개월 앞당긴 1973년 6월 9일 우리나라 최초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흘렀다. 한 달 뒤에는 연간 조강생산능력 103만t의 1기 설비가 성공적으로 완공됐다. 이후 박 명예회장의 '우향우 정신'은 오늘날 포스코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이자 기업문화로 자리잡았다.
1981년 2월 18일 조강연산 850만t 규모의 포항4기 설비종합 준공에 이르기까지 포항제철소 건설사업은 규모나 물량, 공사 금액, 기간 등 어느 모로 보나 사상 초유의 대역사의 연속이었다.
포스코는 주설비 착공 13년만에 910만t 체제의 대단위 제철소를 세계 에서 가장 저렴한 건설비로, 가장 짧은 기간 내에 완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1972년 7월 후판공장 가동 이후부터는 조업과 건설을 병행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매기(每期)마다 공기(工期)를 단축해 왔다.
특기할 일은 260만t 체제의 2기 설비를 준공한 1976년 5월 이후부터 우리의 철강생산 능력이 북한을 앞지르기 시작하여 910만t 체제가 완료 된 1983년 5월에는 2배 이상의 조강생산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1기 가동 6개월만인 1973년 말 46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이래 매년 흑자행진을 지속하면서 2기부터 자체자금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설비확장 투자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이어 포스코는 1978년 10월 제2제철 실수요자로 확정되면서 광양에 4기에 걸친 총 1140만t 규모의 일관제철소 건립을 시작했다. 1992년 10월 2일 4반세기 대역사 종합준공을 함으로써 광양 제철소는 최적의 생산규모를 갖춘 세계 최대의 단일제철소이자 21세기 최신예 제철소로 탄생됐다.
오늘 날 세계 5위(조강생산량 기준) 철강사로 성장한 포스코의 역사는 한국 경제의 성장사와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연간 조강생산 103만t 규모의 1기 설비로 시작한 포스코는 지난해 조강생산량 3370만t, 매출액 32조5820억원, 영업이익 5조470억원, 순이익 4조2030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창립 당시 34명의 임직원은 1만7450여명(계약직 포함)으로 늘어났다.
또한 포스코는 조업 개시 이래 품질 좋은 철강재를 공급함으로써 조선, 가전, 자동차 등 국가 산업발전의 근간이 되는 주요 관련 산업이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는 당대 35년 동안 연간 조강생산 800만t을 이뤘지만 박 명예회장은 25년간의 사장 및 회장 재임기간 중 2100만t을 달성했다. 그가 첫 삽을 뜬 포스코는 오늘날 세계 5위, 연간 조강생산량 3540만t에 달하는 굴지의 철강사로 성장했다.
올초 포스코 청암재단 시상식을 찾은 박 명예회장은 포스코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뒤에 있는 정준양 회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정 회장이 잘하고 있다"며 믿음을 드러냈다. 9월에는 과거 포항에서 자신과 함께 근무했던 퇴직직원들과 19년만에 재회하는 자리를 마련해 "청춘을 바친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우리의 추억이 포스코의 역사와 조국의 현대사 속에 묻어 있음을 잊지 말자"고 언급키도 했다.
종합제철 건설 계획이 보다 구체화된 것은 1961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부터다. 정부는 철강산업이 다른 산업에 기초 소재를 제공하는 산업으로 빈곤에서 탈피하고 자립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제일 먼저 기초를 다져야 할 필수 산업임을 인식하고, 조국 근대화라는 국가적 비전을 이루기 위해 종합제철건설을 구상했다. 이 특명을 받은 자가 바로 당시 대한중석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중이던 박 명예회장이다.
박 명예회장은 1968년 4월 1일 34명의 임직원들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의 창립식을 가졌다. 그리고 1970년 4월, 경북 포항 영일만에 조강연산 103만t 규모의 1기 설비 착공에 돌입했으나 공사는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다. 건설 경험도, 기술도 없던 터라 더욱 쉽지 않았던 도전이었다. 박 명예회장은 "혈세로 짓는 제철소 건설이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해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며 입술을 깨물고, "국가숙원사업에 동참한 긍지와 사명감을 갖자"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불퇴전의 각오로 매진하자는 리더의 강력한 의지는 현장에도 그대로 녹아들었다. 결국 예정보다 1개월 앞당긴 1973년 6월 9일 우리나라 최초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흘렀다. 한 달 뒤에는 연간 조강생산능력 103만t의 1기 설비가 성공적으로 완공됐다. 이후 박 명예회장의 '우향우 정신'은 오늘날 포스코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이자 기업문화로 자리잡았다.
1981년 2월 18일 조강연산 850만t 규모의 포항4기 설비종합 준공에 이르기까지 포항제철소 건설사업은 규모나 물량, 공사 금액, 기간 등 어느 모로 보나 사상 초유의 대역사의 연속이었다.
포스코는 주설비 착공 13년만에 910만t 체제의 대단위 제철소를 세계 에서 가장 저렴한 건설비로, 가장 짧은 기간 내에 완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1972년 7월 후판공장 가동 이후부터는 조업과 건설을 병행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매기(每期)마다 공기(工期)를 단축해 왔다.
특기할 일은 260만t 체제의 2기 설비를 준공한 1976년 5월 이후부터 우리의 철강생산 능력이 북한을 앞지르기 시작하여 910만t 체제가 완료 된 1983년 5월에는 2배 이상의 조강생산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1기 가동 6개월만인 1973년 말 46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이래 매년 흑자행진을 지속하면서 2기부터 자체자금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설비확장 투자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이어 포스코는 1978년 10월 제2제철 실수요자로 확정되면서 광양에 4기에 걸친 총 1140만t 규모의 일관제철소 건립을 시작했다. 1992년 10월 2일 4반세기 대역사 종합준공을 함으로써 광양 제철소는 최적의 생산규모를 갖춘 세계 최대의 단일제철소이자 21세기 최신예 제철소로 탄생됐다.
오늘 날 세계 5위(조강생산량 기준) 철강사로 성장한 포스코의 역사는 한국 경제의 성장사와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연간 조강생산 103만t 규모의 1기 설비로 시작한 포스코는 지난해 조강생산량 3370만t, 매출액 32조5820억원, 영업이익 5조470억원, 순이익 4조2030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창립 당시 34명의 임직원은 1만7450여명(계약직 포함)으로 늘어났다.
또한 포스코는 조업 개시 이래 품질 좋은 철강재를 공급함으로써 조선, 가전, 자동차 등 국가 산업발전의 근간이 되는 주요 관련 산업이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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