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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봄날 저녁 - 엄원태

청산(푸른 산) 2016. 4. 20. 20:23
 
♣♡ 그 봄날 저녁 -  엄원태  ♡♣ 

그날 저녁엔 바람이 심하게 쏠려 불고
나무들도 서 있기가 불편했습니다
옮겨 심은 지 얼마 안 되는 향나무들은
제 멋대로 기울고, 뿌리덩이를 쳐든 채
황량히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서성대는 키 큰 나무들 위로
음산한 구름들이 짓누르듯, 낮게 낮게 흐르고
컴컴한 구름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하늘은
남빛이 점차 짙어 어두워 같습니다
밤이 오면, 누구는 저 거친 들판으로
누구는 또 세상의 허술한 집들을 향하여
습기찬 바람을 온 몸에 맞으며 갑니다
제 몸 하나 가누기 어려워 쓸쓸하기만 한
들풀들의 영토에도 밤은 내리고
사람들은 그 어두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
시린 어깨를 웅크려 잠들고
꿈꾸어 아픈 밤을 지나서는 
정말 우연히 불확실한 새벽에 
이르곤 하는 것입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청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