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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시모음

청산(푸른 산) 2015. 12. 14. 10:24
 
♣♡ 송년 시모음 ♡♣ 


송년회 -  시인 목필균·
후미진 골목 두 번 꺾어들면 
허름한 돈암곱창집 
지글대며 볶아지던 곱창에 
넌 소주잔 기울이고 
난 웃어주고 
가끔 그렇게 안부를 묻던 우리 
올해 기억 속에 
너와 만남이 있었는지 
말로는 잊지 않았다 하면서도 
우린 잊고 있었나 보다 
나라님도 어렵다는 살림살이 
너무 힘겨워 잊었나 보다 
12월 허리에 서서 
무심했던 내가 
무심했던 너를 
손짓하며 부른다 
둘이서 
지폐 한 장이면 족한 
그 집에서 일년 치 만남을 
단번에 하자고 
 
가는 해 오는 해 길목에서 - 시인 경한규·
또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아쉬움과 작은 안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립니다 
봄볕 같은 햇살에 
땅 끝이 다시 파릇파릇 되살아나 
겨울이 겨울답지 않다고 투덜거리다가도 
가던 길 멈추고 별빛 끌어내리면 
이내 
없는 이들의 가슴에 스미어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12월의 플랫폼에 들어서면 유난히 
숫자 관념에 예민해집니다 
이별의 연인처럼 22 23 24...... 31 
자꾸만 달력에 시선을 빼앗깁니다 
한 해 한 해 
냉큼 나이만 꿀꺽 삼키는 것이 
못내 죄스러운 탓이겠지요 
하루하루 
감사의 마음과 한 줌의 겸손만 챙겼더라도 
이보다는 훨씬 
어깨가 가벼웠을 텐데 말입니다 
오는 해에는 
이웃에게 건강과 함박웃음 한 바가지만 
선물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홀로 떠있는 섬과 같습니다 
못난 섬 
멀리 내치지 않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 시인 유안진
송년에 즈음하면
도리 없이 인생이 느껴질 뿐입니다
지나온 일년이 한생애나 같아지고 
울고 웃던 모두가
인생! 한마디로 느낌표일 뿐입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자꾸 작아질 뿐입니다
눈감기고 귀 닫히고 오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모퉁이 길 막돌멩이보다
초라한 본래의 내가 되고 맙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신이 느껴집니다
가장 초라해서 가장 고독한 가슴에는
마지막 낙조같이 출렁이는 감동으로 
거룩하신 신의 이름이 절로 담겨집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갑자기 철이 들어 버립니다
일년치의 나이를 한꺼번에 다 먹어져
말소리는 나직나직 발걸음은 조심조심
저절로 철이 들어 늙을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청  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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