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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친구

청산(푸른 산) 2014. 5. 7. 21:58

 

◆또 다른 친구

 
“눈에서 벌레가 왔다 갔다 해.”
그래서 안과에 가느라

모임 참석이 어렵다고 한 친구가 말했을 때는

무슨 소린가 했다.

 

얼마 안 있어 알게 됐다.

나의 왼쪽 눈에서도

하루살이 같은 게 자꾸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안과란 곳에 가서 얻은 진단 결과는

비문증’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안구를 채우고 있는 유리체가 수축하는 과정에서

뭔가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 증상이라고 한다.

의사는 50~60대 가운데 7, 8명이 겪는다며

익숙해지는 수밖에는 별 치료법이 없다고

안약 하나를 처방해주지 않았다.

그냥 보내기가 그랬는지

안경용 시력검사만 꼼꼼하게 해줄 뿐이었다.

 
올 들어 책을 좀 더 들여다보려 해서 그런 건가?

며칠 잠을 푹 자지 못해서 그런 건가?

병원 문을 나서면서부터

나름의 원인을 자꾸만 헤아려 보게 됐다.

보편적인 노화증상의 하나라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나, 쌩쌩했었는데’를 떨치지 못하고 있음이다.

출근했다가 딸을 낳았고,

늦도록 야근한 다음 날 아들을 낳았다.

 
출산과 건강검진 때를 빼고는

지난해 엄지손가락이 딸깍거리는 통증으로

정형외과에 한번 들린 게 지금껏 병원을 찾은 전부였다. 

게다가 아들과 그 친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날다’로 통하고 있지 않은가.

체구가 작기도 하거니와 날렵하니 산을 잘 탄다 하여

날다람쥐를 줄여 붙여준 별명이다.

은근히 ‘아직 맛이 가지 않았음’을 즐기고 있던 터에

‘날다’를 떼고, 날아다니다 떨어진

‘떨다’로 바꿔 붙여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라니.

 
그것도 한쪽 눈 때문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조사에 따르면 50~60대의 3분의 2 이상이

‘나는 아직 청춘’이라 여긴다던데

나도 그중 한 사람이구나 싶어서였다.

몸이 천 냥이면 구백 냥이랄 만큼

중요한 눈이

보내고 있는 노화의 신호이니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지,

이 무슨 눈 타령인가 싶어서이기도 했다.


나이 먹어갈수록 또 다른 친구가

하나, 둘, 몸 어디에선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눈을 조심하라>
그런데 한쪽 눈에 뭔가 낀 듯 불편하니

양쪽이 다 편치 않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책도 노트북도 다 접고

눈을 산책시키는 횟수를 잦게 할 수밖에 없었다.

집 가까운

청계산에 올라 바야흐로 봄을 이고 성큼 다가오는 듯한

먼 산봉우리들을 올려보았다.

친구들과 함께 대부도 해솔길을 걸으며

수평선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다이아몬드들이 반짝이는 바다도 바라보았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이근 교수의 말마따나

 ‘액정 사회’ ‘모니터 사회’ 속에서

온종일 크고 작은 디지털 화면에만 불을 켜던 눈이

시원해지는 호사를 누렸다.

 오래된 수도원에 걸려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눈을 조심하라’!

보는 것에 이끌려감에 대한 경계일 것이다.

보는 데는 별로 사색이 필요치 않아서

본 그대로 먹고, 입고, 갖고 싶게 만들기 십상이다.

 
그리하여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아닌

나는 내가 보아 온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가 되는가 보다.

 

더구나

정작 내가 보는 것은 내 눈을 통해서라기보다

액정과 모니터를 통해서가 대부분이 되고 있는 세상이다.

내 눈이 아닌 다른 수많은 눈으로 내가 규정되고,

내가 없어진 내 속에 알지 못할 두려움이 자리 잡곤 한다.
 
특히

딸 아들 또래의 젊은이들이 그럴 것 같다.

최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병호 박사는

“온통 소비를 권하고, 중독시키려고 하지만 속지 말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지라”고 강조했다.

“나도 젊은 날엔 눈에 보이는 세계에 치중했었으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관심을 두다 보면,

보다 큰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되지 않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나 또한 비문증을 신체적인 노화신호로서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에 보다 더 관심을 가지라는

정신적 신호로도 받아들여야겠구나 싶다. 

 

비문증

<골골 백 년>
안과 진료 대기실에는

 젊은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의외라는 내 표정을 알아챘는지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가

“요즘 애들은 죄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내 증상을 묻고는

“그냥 지내다 보면 절로 좋아지기도 하니까

걱정할 거 없다”고 했다.

 
진찰도 받기 전에 무슨 속단인가 했으나

의사로부터 들은 말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비문증과 친구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눈에서뿐이겠는가.

앞으로 더 나이 먹어갈수록 또 다른 친구가

하나, 둘, 몸 어디에선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큰 병과는 친구 하라는 말이 있다.

병 때문에 낙담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게 아니라

잘 관리하며 무리하지 말고 지내란 뜻이다.

심지어 말기 암과 친구 하면서

장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가끔 듣고 읽게 된다.

소소한 병치레가 잦은 사람이 도리어 오래 산다는

‘골골 백 년’ 또한 같은 맥락의 옛말이다.

 
자기 몸의 건강에 대해 자신하지 말고

겸손하게 보살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건강을 큰소리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병원과는 멀다고

입찬소리’를 해온 나야말로 새겨야 할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명예퇴직을 한 친구가 나를 불렀다.

위로와 격려를 나누고 싶었던가 보다.

흐린 날인데도 갑작스러운 비문증 때문에

선글라스 끼고 나왔다고 했더니

 

친구는 자기도 그런 증상이 있었다며

빌베리를 먹으니 좀 개선되는 것 같더라고 했다.

블루베리가 눈에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효능이 몇 배 더하다는 빌베리는 처음 듣는

이름의 열매였다.

 
며칠 후

친구는 호주 출장 갔을 때 사온 거라면서

빌베리 추출캡슐이 가득한 약병을 건네주었다.

마음이 편치 않을 와중에 내 불편까지 신경 써주다니….

그런 친구가 있기에 행여 또 다른 친구가 나타나더라도

웬만하면 잘 지낼 수 있지 않으려나.     

 

출처/  시니어조선. 성진선<시니어조선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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