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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나드리

청산(푸른 산) 2011. 5. 26. 11:00
 
통영 나드리
신록의 5 월을 맞이하여 그대로 지나기가 무심해서 관광버스를 타고 통영에가서 소매물도와 미륵산 관광특구 해안도로 일주 미륵산 케이블카로 한려수도 동양의 나포리를 한눈에 조망하고 제승당등을 관람하고 오려고 5. 23. 1박 2일 코스로 여행을 떠났으나 풍랑으로 인하여 소매물도는 가지못하고 돌아와서 매우 유감스럽지만 기후관계이니 후일을 기약하고 왔다 경상남도 남단의 고성반도 남부와 이순신으로 유명한 한산도를 포함하여 남해의 192개의 섬이 있다. 그 중 41개가 유인도이다. 동쪽은 거제시, 서쪽은 남해군, 북쪽은 고성군과 접하며, 남쪽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이다. 같은 위도상에 있는 세계의 중 도시는 일본의 오사카, 중국의 카이펑,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등이다. 통영시는 평야가 없고, 해안선을 따라 반농반어의 촌락이 형성되었는데, 그나마 비탈진 언덕에 밭농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에 수온이 적당하고 동해 난류가 흘러 수산업의 보고라고 할 수 있어 일찍부터 어업이 발달하였다. [편집] 미륵산미륵산(彌勒山, Miruk Mountain)은 미륵도 중앙에 해발 461m로 우뚝 솟은 위풍 당당한 산이며 100대 명산 중 하나이다. 미륵산을 용화산(龍華山)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산에 고찰 용화사가 있어 그렇게 부른다고도 하고, 또 이 산은 미륵존불(彌勒尊佛)이 당래(當來)에 강림하실 용화회상(龍華會上)이라 해서 미륵산과 용화산을 함께 쓴다고도 한다. 미륵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울창한 수림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고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과 바위굴이 있으며 고찰과 약수, 봄 진달래와 가을 단풍이 빼어나 명산으로서의 덕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산정에 오르면 한려해상의 다도해 조망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우며, 청명한 날에는 일본 대마도가 보인다. 미륵산 자락에는 고찰 용화사와 산내암자 관음암, 도솔암이 있고 효봉문중(曉峰門中)의 발상지 미래사(彌來寺)가 있다. 남쪽 기슭에 있는 미래사는 석두·효봉 두 큰 스님의 안거를 위해 지은 것이고, 북쪽 기슭에 있는 용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은점선사가 창건하였고, 그 후 조선 영조 때 벽담선사가 재건하였다. [11] 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통영관광공사의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 카를 타고 누구나 쉽게 조망할 수 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해상국립공원인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핵심이 되는 지역으로 바다를 횡단하는 통영대교의 야경이 아름답다. 이순신 동상이 서있는 남망산에서 한려수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 해군 총사령부라고 할 수 있는 삼도수군통제통제사 본영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임진왜란 관련 유적이 많다.

 

덕유산 휴계소

 

리무진 관광버스로 여행(덕유산 휴계소에서)

호반 부폐에서 점심식사

호반뷔폐삭당건물

제승당 가는 유람선에서 설명하는가이드

형제섬(제승당가는길에)

다른 유람선도 가고

많은 섬들

 

 

제승당 출입문

제승당 올라가는길

제승당 건물

내부 현판

 

당시 사용한 포와 사진

 

후손통제사 사적비

 

 

지휘소 루각

 

이충무공 활 쏘든 루각

바다건너 목표물 관혁

영정을 모신 사당 전경

제승당 유허비

 

    제승당은 경남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875번지에 위치한 사적 제113호이다. 경 내의 면적은 600,871㎡이며, 건물은 28동, 건평 1,602㎡이며, 통영시에서 직선으로 6.7km 떨어진 한산섬에 위치한다. 섬이기 때문에 배가 유일한 접근 수단이며, 통영에서 25분이 소요된다. 거제도에서는 배를 타고, 추봉도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후 이순신은 한산대첩을 통해 바다의 제해권을 구축하였다. 그 후 제승당을 짓고, 1593년 선조 26년부터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원균의 참패로 소실된 선조 30년까지 4년간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으로 삼아 제해권을 장악하면서 국난을 극복하는데 기여한 유서깊은 사적지이다. 선조 30년 1597년에 폐진이 되었다가 142년 후인 1739년 영조 15년에 통제사 조경이 중건하고, 유허비를 세웠다. 1959년 정부가 사적 제113호로 지정하여 여러 차례 보수를 거듭해 왔다. 1975년 정부는 영역을 확장하여 보수를 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79년에는 한산대첩비를 건립하였다

 

 

통영항구

통영포구

 

바다가 정자

 

통영 해양스포츠 센타

 

 

저녁식사 회정식하는 일행들

식사하며 한 캇(용돌이와 어부인 박순희 여사)

같이온 일행부부도 한캇

 

소주도 한잔 기우리고

초등학교 동창 남여10명이 같이왓다

 

 

 

양귀비 꽃밭에서 (저녁식사후 산책)

 

 

아침 식사한 굴밥집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는 관광차들

박경리 기념관

1926년 경상남도 충무(지금의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결혼하였으나 부군은 좌익으로 몰려 한국전쟁 중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았다. 1955년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이 현대문학에 발표되면서 작가로서의 본격적인 삶을 시작한다. 2007년 7월말 폐암이 발견됐으나 고령을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였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되어, 2008년 4월 4일 뇌졸중 증세까지 나타나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하였다. 입원 후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2008년 5월 5일 오후 2시 45분 경 숨을 거뒀다. 대한민국 정부는 박경리의 사망 직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