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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크는 돌탑

청산(푸른 산) 2011. 5. 18. 08:10

키 크는 돌탑

    키 크는 돌탑 산골에는 산개구리가 개골개골, 버들강아지가 비누방울처럼 퐁퐁퐁 부풀어지는 봄이었다. 동자승은 스님을 따라 모처럼 큰절을 가고 있었다. 지금 가고 있는 큰절에는 몇 해 전부터인가 공부하는 스님들에게 존경을 받는 큰스님이 살고 있었다. 눈썹이 허연 노인이었지만 허리는 젊은 스님 못지 않게 곧은 어른 스님이었다. 큰스님은 큰절 집들 중에서 가장 작은 방 두 칸짜리 토굴에서 젊은 스님과 단출하게 살고 있었다. 동자승이 물었다. "큰스님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요?" "겨우내 공부한 것을 내놓아 보라고 하실 거야." "머릿속에 있는 것을 어떻게 꺼내놓아요." "그거야 공부한 사람마다 다르지. 다 방법이 있단다." 동자승은 스님의 뒤꽁무니를 따라 걸으면서 다시 물었다. "스님은 어떻게 내놓을 거에요?" "큰스님이 묻는 방법에 따라 달라지지. 그러니 너에게 말할 수 없구나." 스님은 동자승이 별것을 다 묻는다며 입을 다물었다. "대답을 못한다면 어떻게 돼요?" "꾸중을 하실 거야. 밥값 내놓으라고." 그래도 동자승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큰스님이 쌀을 보내주신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밥값을 내놓죠?" "공부 잘하라고 신도님들이 보내준 쌀을 헛되이 축냈으니 큰스님 이 대신 야단을 치시는 거야." "아, 알겠다." "무엇을?" "공양을 하기 전에 늘 합장을 먼저 하고 드셨잖아요. 신도님, 이 밥 먹고 공부 잘 하겠습니다 하고 기도했죠?" "하하하. 그래 네 말이 맞다." 스님은 동자승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동자승은 스님에게 칭찬을 받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큰절의 일주문이 보였다. 물이 힘차게 흐르는 개울 건너에는 큰절로 가는 숲길이 뻗어 있었다. 울물은 징검다리를 빠져나가면서 햇볕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빛났다. 그런데 스님이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돌아섰다. 동자승도 징검다리를 건너다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스님이 손사래를 쳤다. "가자, 돌아가자. 이 절은 우리가 살 곳이 못된다." 동자승은 의아해 하며 물었다. "다시 암자로 가요? 스님, 다리 아파 죽겠어요." 징검다리 사이로 파란 배춧잎이 서너 가닥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그리고 콩나물 줄기도 얼기설기 떠내려왔다. "스님, 저것 때문에 화나 그러시죠." "화내고 말 것도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지." 그때였다. 노스님이 헐레벌떡 쫓아왔다. "스님, 방금 배춧잎이 떠내려가는 것을 봤소? 젊은 스님들이 겉잎이라고 해서 함부로 개울에 버리는 것을 야단 치는 사이에 떠내려가고 말았다오. 콩나물도 마찬가지라오." 스님은 노스님을 보자마자 단번에 큰스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스님은 개울물로 첨벙첨벙 들어가 배춧잎과 콩나물 줄기를 건져 왔다. 그리고는 다시 노스님을 따라 큰절로 향했다. 스님은 큰스님이 머무는 작은 토굴로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동자승도 큰절을 따라했다. 큰스님이 알밤 2개를 동자승에게 내줬다. "이 밤은 뒷산에 주운 것이다. 다람쥐에게 양해를 얻고 지난 가을에 열두 개만 주었다. 겨우내 먹고 남은 것이 받거라." 큰스님을 모시고 사는 젊은 스님이 꿀차를 내왔다. 그러자 큰스님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 차는 큰절에 들어온 꿀차가 아니냐." "손님이 오셨기에 조금 얻어왔습니다." "어서 가져가거라. 큰절에 사는 스님들 몫으로 들어온 것이지 손님 대접하라고 신도 들이 보내온 것 아니다." 스님은 꿀차를 마시지 못했지만 가슴이 훈훈했다. 큰절의 물건을 구분할 줄 아는 스님의 모습에서 자신도 그래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동자승은 꿀차 맛을 보지 못한 것이 섭섭했다. 잠시 후에는 다시 큰절로 내려갔다. 스님들이 모두 함께 모여서 일하는 울력 시간이었다. 돌담 쌓는 일이었다. 노스님도 어느새 내려와 돌담 쌓는 일을 도왔다. 힘이 없어 무거운 돌을 들지는 못하지만 작은 돌멩이들을 주워 날랐다. 젊은 스님들은 큰돌로만 담을 쌓으려 했다. 그래야 일을 빨리 끝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젊은 스님들은 큰스님이 주어온 작은 돌들을 몰래 한쪽으로 버렸다. 가 봐도 작은 돌멩이들은 쓸모가 없었다. 큰돌 사이에 빈틈을 채울 때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필요 없었다. 그러나 큰스님은 담 속에 들러가지 못하는 작은 돌멩이들을 모았다. 작은 돌멩이들이 모아지자 돌무더기가 되었다. 동자승이 물었다. "큰스님, 돌멩이를 쌓아 무얼 만드세요?" "이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이란 하나도 없다. 다 제 자리가 있는 법이다." "담에도 끼지 못하는 못생긴 돌이잖아요." "내년에 다시 오너라. 그때는 이 돌멩이들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 보게 될 것이다." 울력이 끝나고 동자승이 스님에게 물었다. "큰스님이 만드는 것이 무어예요?" "돌탑이다." "못생긴 돌멩이로도 돌탑이 되네요." "그럼, 못생긴 돌멩이끼리지만 서로 힘을 합치니 무너지지 않는 돌탑이 되는 거란다." "큰스님 말씀대로 이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스님은 이제부터 큰스님 옆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큰스님이 하는 대로만 하면 그것이 올바른 수행이었다. 큰스님을 닮아가는 것이 최고의 공부라고 깨달았다. "두고 봐라. 저 담에 합장을 하는 사람은 없어도 큰스님이 쌓는 돌탑에 합장하는 사람은 많아질 것이다." 다음 날부터 스님과 동자승도 큰스님이 만들어 가는 돌탑에 오다 가다 하나 둘씩 돌멩이를 얹었다. 돌탑은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랐다. - 불교설화(佛敎說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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