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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섬 청년과 만나다

청산(푸른 산) 2016. 1. 6. 10:18

 

'이 섬은 벽화가 없어서 참 좋네요.' 의외였다. 확실히 청춘이 섬을 보는 눈은 달랐다. 섬 주민들은 왜 우리 섬에는 다른 마을에 다 있는 마을 벽화가 없느냐고 안달을 하는데, 청춘들은 오히려 그것이 없어서 좋다고 말했다. '없어서 더 신선하다'라는 것이다.

청춘들이 둘러본 섬은 전남 보성군의 장도였다. 사단법인 섬연구소(소장 강제윤)가 전라남도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남도 청년 섬캠프(이하 섬캠프)’의 일환이었다. 섬캠프에서는 이곳 외에 장흥의 연홍도·사양도·애도를 둘러보았다. 관광지로 개발된 적 없는 이 섬에서는 펜션이나 민박은커녕 슈퍼마켓도 찾아볼 수 없다(애도에만 ‘쑥섬카페’가 있다). 오직 섬 주민들만 오가던 곳이다.

 

연홍도와 장도는 전라남도가 선정한 ‘가고 싶은 섬’으로도 꼽혀 앞으로 섬 관광 활성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예정이다. 섬연구소에서는 섬 개발이 시설 투자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발굴하는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며 청년의 생각을 빌리기 위한 섬캠프를 기획했다. 매회 2030세대 30명 정도가 참여하는 캠프가 세 차례 진행되었는데, <시사IN>도 이 행사를 후원했다. 화가 강영민, 시인 신현림, 배우 류승룡, 큐레이터 최윤정씨 등이 이번 섬캠프에 멘토로 함께했다.

 

청춘들은 소외된 섬을 ‘가고 싶은 섬’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힌트를 주었다. 섬 주민들은 ‘오고 싶은 섬’으로 만들기 위해 뭔가를 채우고 싶어 했지만 청춘은 오히려 ‘섬의 결핍’을 즐겼다. 고운 모래가 깔린 넓은 백사장이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전망대가 없어도 그저 한가롭게 섬을 소요했다.

 

ⓒ시사IN 조남진 : 12월7~8일 남도 청년 섬캠프 참가자들이 연홍도 해안을 둘러보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 12월7~8일 남도 청년 섬캠프 참가자들이 연홍도 해안을 둘러보고 있다.

섬캠프는 남도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강제윤 소장의 ‘섬학 특강’을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 우리나라 역대 왕조의 섬 관련 정책부터 지금의 난개발 문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청춘들의 반응은 답사를 갈 때와 올 때가 달랐다. 갈 때는 주로 경청했지만 올 때는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섬캠프를 진행한 네 곳의 섬과 그 섬에서 청년들이 했던 이야기를 전한다.

 

연흥도:이 섬을 그대 품안에

고흥 연홍도는 석양이 멋진 섬이다. 서쪽에 금당도가 있는데 기암괴석이 일품이다. 그 기암괴석 너머로 보는 석양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긴 여운을 선사한다. 금세 해가 넘어가는 다른 곳의 석양과 달리 천천히 지속된다. 섬의 끝자락에 목넘이해변이 있는데, 석양을 가장 오래 볼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52가구 82명이 사는 연홍도는 거금도 신양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간다. 거금도까지는 연도교로 연결되어서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고흥반도 끝자락에서 한센인 요양시설이 있는 소록도가 연륙교로 연결되고, 다시 소록도와 거금도가 연도교로 이어진다. 연홍도는 예전에 말의 형상을 닮은 섬이라고 해서 맛도(馬島)로 불리기도 했다.

 

연홍도는 작은 섬이다. 면적이 0.55㎢로 해안선이 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이 섬의 매력이 되었다. 당골이 있는 당산에 오르면 섬이 한눈에 보인다. 섬을 둘러보던 한 참가자는 '섬이 내 품에 다 들어와서 좋다. 섬이 작아서 내 섬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연홍도를 좋아해서 매년 이곳에 와 쏨뱅이 낚시를 즐긴다. 구 회장이 섬에 오면 묵곤 하던 민가에 섬캠프 청년들도 묵었다.

 

ⓒ시사IN 조남진 : 연홍도 주민들.

 

시사IN 조남진 : 연홍도 주민들.

고흥반도와 소록도 그리고 거금도는 연륙교로 연결되어 있지만 연홍도는 배를 타고 들어온다. ‘첩첩섬중’이라 할 만큼 섬이 많은 연홍도의 명소는 폐교를 미술관으로 바꾼 연홍미술관이다. 2006년 11월 개관한 이 미술관은 앞마당의 정원이 특히 예뻤는데 2012년 태풍 볼라벤 때 쑥대밭이 되었다. 비록 정원은 사라졌지만 미술관은 계속 운영해왔다. 후원회원들이 작품을 기증해주어 상설전이 열리고 있다.

 

연홍미술관 선호남 관장이 연홍도를 미술섬으로 꾸민 주인공이다. 선 관장은 벽화를 그리는 대신 동네 벽마다 선반을 만들어 화분을 가꿨다. 겨울이라 꽃은 없었지만 선반과 화분이 운치를 더했다. 연홍미술관은 방문자들을 위한 임시 숙소 구실도 하는데 안주인의 음식 솜씨가 좋아서 섬캠프 참가자들이 좋아했다. 특히 갑오징어·시금치무침이 일품이었다.

 

연홍미술관을 중심으로 섬캠프 청년들은 다양한 상상력의 날개를 펼쳤다. 고흥 유자막걸리가 맛있다며 ‘미술관 옆-미술집(쌀로 빚은 술집)’을 만들자거나, 낮은 미술관 밤은 ‘밤바다-밤빠’로 활용하자고 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묵었던 민가에서 할머니들이 만들어준 ‘쏨뱅이식해’가 맛있다며 섬의 대표 음식으로 키우자고도 했다.

 

연홍미술관을 중심으로 연홍도는 인가가 있는 곳과 없는 곳으로 나뉜다. 밭은 주로 인가 쪽에 있다. 인가가 없는 쪽에는 대개 묘지가 있고 풍광은 이곳이 뛰어났다. 해안을 따라 돌길을 걷는 것도 좋았고 한적한 백사장을 걷는 것도 좋았다. 섬캠프 청년들은 이 백사장을 따라 게스트하우스를 짓거나 캠핑장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추천했다.

 

사양도와 애도:‘올레’가 따로 없군

나로우주센터 가는 길인 고흥 나로도항(축정항)에서 들어가는 사양도와 애도는 1970~ 1980년대에 번성했던 섬이다. 사양도는 1978년 전국 어가소득 1위로 대통령상을 받은 곳이고, 안강망 어선 기착지였던 애도는 ‘바다에서 번 돈으로 육지에서 논을 사 소작을 준다’고 할 정도로 부자 섬이었다. 그러나 연해 어업자원이 고갈되면서 두 섬은 인구가 확 줄었고 지금은 대부분 어르신들만 살고 있다.

 

110가구 200여 주민이 사는 사양도에서 섬캠프 청년들은 ‘젊은’ 아주머니를 만나 찰고추장을 얻어먹었다. 캄보디아 새댁에 이어 이 섬에서 두 번째로 젊다는 이 아주머니는 결혼 25년차였다. 섬의 주민이 줄면서 사양도는 민가가 없는 서쪽으로는 아예 길이 끊겼다. 청년들은 섬의 서쪽이 해안절벽도 있고 해발 207m의 봉화산도 있어서 산책로로 개발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양도에서 청년들이 가장 좋아한 곳은 선창마을과 사양마을 사이 폐교였다. 인가가 없는 곳이라 조용하고 교사가 언덕에 층지어 있어서 모든 건물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 유자나무를 비롯한 정원수가 많았고 조각물도 아직 건재해 다른 시설로 만든다면 잘 활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섬캠프 청년들이 숙박을 한 애도는 사양도보다 더 작은 섬이었다. 15가구에 25명이 사는 애도는 면적이 0.32㎢로 이번에 답사한 섬 중에서 가장 작았다. 애도는 원래 조기잡이 중선이 정박하던, 선원만 300여 명이 묵을 정도로 번잡하던 섬이었다. 그런데 연안어업이 쇠퇴하면서 역시 내리막길을 걸어 이제는 ‘애틋한 섬’이 되었다.

 

ⓒ청년섬캠프 제공 : 섬캠프 참가자들이 애도 쑥섬카페(위)에 모였다. 카페 옆 숙소에는 30명 정도 머물 수 있다.

 

ⓒ청년섬캠프 제공 : 섬캠프 참가자들이 애도 쑥섬카페(위)에 모였다. 카페 옆 숙소에는 30명 정도 머물 수 있다.

청년들은 애도를 ‘반전 매력’이 있는 섬이라고 평했다. 민가가 있는 뒷산으로 숲이 우거져 있다.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굵은 육박나무 숲이다. 이 숲의 중턱에는 당골이 있다. 육박나무 사이를 힘겹게 올라가면 시원한 다도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것을 청년들은 ‘반전 매력’이라고 불렀다.

 

사양도와 애도는 골목이 예뻤다. 마치 제주올레 돌담길처럼 이곳저곳으로 구불구불 뻗어 있었다. 청년들은 이 골목의 대문에 주목했다. 섬은 바람이 많아서 담이 높고 지붕은 낮다. 그래서 집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집주인의 개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대문이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대문에 개성을 담는다. 청년의 예리한 눈은 이 대문을 놓치지 않았다.

 

섬캠프에 온 청년들은 자기들이 보기에 ‘별장을 지으면 좋을 것 같은 장소’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별로 풍경이 좋지 않은 곳에 인가가 몰려 있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며 석양이 아름답고 백사장에 인접한 곳에는 인가가 없었다. 강제윤 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섬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는 곳은 물이 나고, 바람이 약하고, 포구가 가깝고, 텃밭을 가꿀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곳이 사는 데는 명당이지만, 여러분이 좋아하는 곳은 전부 무덤자리다. 곧 죽은 자들의 명당이다.'

 

연홍도에 연홍미술관이 있다면 애도에는 쑥섬카페가 있다. 갈매기 모양의 쑥섬카페는 이 섬을 찾는 관광객을 위해 만든 곳이고, 카페 옆에는 게 모양의 숙소가 있다. 쑥섬카페 김상현 대표는 애도의 ‘반전 매력’을 만들어냈다. 섬 주민들이 나이가 들면서 농사짓기를 포기한 밭에 화원을 일궜다. 특히 섬 정상 노지에 일군 화원이 일품이다. 시야가 사방으로 트인 곳에 화원이 있어서 섬캠프 청년들이 매우 좋아했다.

 

쑥섬카페 김 대표는 섬캠프 청년들이 다녀간 뒤 페이스북에 후기를 남겼다. '우리 쑥섬은 반전 매력, 예상 밖의 매력이 있다. 민박의 적정선은 30명 정도이고, 40명까지는 무난하다. 섬 어머님들이 민박을 내어주시고 도와주어야 가능하다. 민박을 위해 화장실과 샤워 시설은 좋아야 한다. 음식은 주변의 산물이면 좋다. 톳무침·쑥국·톳 발효차·유자차가 인기가 있었다.'

 

장도:셰프 레지던시를 만들면 어때요?

섬캠프의 마지막 답사지인 장도는 이번에 방문한 섬 중에서 가장 큰 곳이다. 면적이 2.92㎢로 주민도 600명이 넘는다. 대촌리·부수리·해도리 세 개의 행정리와, 비록 전교생이 2명에 불과하지만 폐교되지 않고 운영 중인 분교도 있다. 2013년 람사르 협약에서 해안보존 습지로 지정된 넓은 갈대밭과 갯벌이 매력적이고, 특히 사진이 예쁘게 나와서 요즘 젊은이들이 애용하는 인스타그램의 명소가 될 법한 곳이다.

 

ⓒ청년섬캠프 제공 : 장도 갯벌에서 난 꼬막으로 차린 꼬막 정식.

 

ⓒ청년섬캠프 제공 : 장도 갯벌에서 난 꼬막으로 차린 꼬막 정식.

벌교 꼬막의 최대 산지인 장도는 이번 섬캠프 일정 가운데 가장 입이 호강한 곳이기도 했다. 남도를 관광할 때 보통 벌교읍이나 순천만에서 ‘꼬막정식’을 먹곤 하는데, 장도 대촌마을에서 먹은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참꼬막·양념꼬막·꼬막전·꼬막회무침을 비롯해 낙지굴·바지락·소라·짱뚱어 등 갯벌과 바다에서 나오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 10여 가지나 나왔다. 음식을 담은 그릇 말고는 모두 장도에서 나온 것으로 차린 상이었다.

 

장도에서는 진짜 갯벌을 만날 수 있다. 진짜 갯벌과 가짜 갯벌을 구분하는 방법은 시각이 아니라 후각이다. 불쾌한 냄새가 나는 육지 갯벌과 달리 진짜 갯벌에서는 불편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수만 년 동안 벌교천에서 내려온 자연 퇴적물이 만들어낸 장도 갯벌은 황토나 모래가 섞이지 않은 점토 갯벌이라 꼬막이 많이 난다.

 

1박2일 동안 꼬막의 향연을 맛본 청년들은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보통 예술가 레지던시는 화가를 초대하는데, 이 섬에는 셰프 레지던시를 만들어 요리사도 초대하자는 것이다. 요리사를 초대하면 이 섬에 머무르는 다른 예술가들도 행복해질 것이며, 꼬막짬뽕이나 꼬막스파게티처럼 이 섬에 머무르는 요리사가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들도 나왔다.

 

독특한 캠핑장 아이디어도 이어졌다. 꼬막섬에 캠핑장을 만드는데, 사이트를 구축할 때 버려진 꼬막 껍데기를 바닥에 깔자는 것이다. 꼬막 껍데기 위에 텐트를 치면 뭔가 각별한 느낌이 들어서 인기가 있으리라는 얘기였다. 섬에 널린 것이 꼬막 껍데기라 충분히 현실성이 있었다. 특히 이곳 꼬막 껍데기는 색깔도 곱고 밟을 때 소리도 좋았다.

 

장도에 다녀온 청년들은 섬에서의 시간이 이중적이라고 말했다. 얼핏 보기에는 느리게 가는 듯한데, 자세히 보면 정말 빨리 간다는 것이다. 배우 송강호를 닮은 장도의 이장님이 아침에는 우체부가 되어 우편물을 나르고, 낮에는 어촌계장으로 바닷일과 밭일을 하다가, 환자가 생기면 긴급 앰뷸런스 선박의 선장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섬의 시계가 빨리 간다는 걸 깨달았다.

 

장도는 지금 개발과 보전의 갈림길에 서 있다. 섬 곳곳에서 개발이 한창이라 덤프트럭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가고 싶은 섬’ 추진반이 생각하는 방향은 보존을 통한 개발이다. 추진반은 장도의 자원을 제대로 조사하고 특징을 잘 살려서 관광 자원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섬캠프 청년들의 방문은 추진반의 방향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청년들은 있는 그대로의 장도를 원했다.

이번 섬캠프에 참여한 여행대학 강기태 총장은 '해류에 밀려온 쓰레기가 섬에 많았다. 섬에는 어르신들뿐이라 치우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었다. 이 쓰레기를 치우며 섬을 보존하는 청년들을 위한 섬여행을 기획하겠다'라고 말했다.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