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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낙엽

청산(푸른 산) 2015. 12. 19. 21:31

◆노인과 낙엽

내가 노인을 처음 만난 것은 20여 년 전이었다.

그때는

나도 동네에 산 지 스무 해가 넘어

집을 나서면 몇 발짝 못 가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만큼 토박이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이를 떠나

오다가다

차나 소주 한 잔씩을 나눌 만한 이웃들이 생겼고,

누군가의 제안으로

여남은 명이 모여 친목회를 만들었다.

그 친목회에서 만난 사람이 그 노인이었다.

 

노인은

나보다 나이도 열 살이나 더 먹었고

동네에서는 알아주는 재력가였다.

 

그는 동네 중심가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의 소유주였으며

그 건물 1층에서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예순에 접어든 노인은

항상

웃는 얼굴에 우스갯소리도 잘 날렸고

웬만한 자리의 술값은

거의 혼자서 내다시피 했기에

두툼한 신망까지 얻고 있었다.

 

그렇지만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없다'고

노인에게도 아픈 상처가 있었으니

부인을 일찍 떠나보내고 홀몸이란 것이었다.

슬하에는 자식이 있긴 했지만

서른 남짓의 외아들만 두었다.

 

돈 있겠다,

인품까지 좋다 보니

주위에서 새 장가를 들라고 했지만

의외로 노인은 강경했다.

 

외아들이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치닥거리를 해주어야지

혼자만 편안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편안하게

여생을 살다가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 연유에선

지 노인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들끓었고

저녁이면 거나하게 취해서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러던

노인이 동네를 떠나

경기도 S시로 이사를 가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

10년 전이었다.

 

제과점도 잘 되었고

동네 중심가에 자리한 건물이

한창 상승기류를 타고 있었는데,

이사를 가겠다는 노인의 선언에

그를 아는 모두는

뭔가 이상하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를 포함한 몇몇이 노인을 불러내어

대포를 나누면서 물었다.

도대체 이사를 가는 이유가 뭐냐고.

 

의외로

노인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들이 S시에서 큰 사업을 벌였는데

따라가서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첨단산업 계통의 사업체를 벌인 아들에게

계속적인 투자가 필요하고

은행빚보다는 건물을 팔아

뒤를 봐주어야 겠다는 노인의 각오는 대단했다.

 

그때는

이미 아들도 장가를 들어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까지 두었다.

 

노인의 생각에

나를 비롯한 모두는 맹렬하게 반대했다.

아들을 도우고 싶으면

차라리

수입의 상당 부분을 매월 보내주거나

그것도 적다면

차라리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도와주라고 강권했다.

 

그래도

노인의 생각을 꺽을 수는 없었다.

우리들 모두는

노인의 고지식한 처사에 야유까지 보냈다.

 

어떤 사람은

삿대질까지 하며 칠십 나이에

아들 놈한테 싹 쓸어서 주었다간

얼마 못 가

쪽박을 차게 될 거라며 비아냥거렸다.

그래도

노인은 꿈쩍도 안 했다.

 

결국

10년 전 노인은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아들이 있는 S시로 떠났다.

떠난 지 몇 달 후

우리들 몇 명을 그곳으로 초청했다.

 

서넛은

노인의 꼴을 보기 싫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이 노인을 찾아갔다.

시내 변두리에 위치한 아들네 아파트에서

노인은 함께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노인은 칠십이라는 나이보다는

훨씬 건강한 육신이었고

그 특유의

유쾌한 웃음소리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마흔줄에 들어선

아들도 공손하게 우리를 맞았고

알뜰한 상차림으로 우리를 접대했다.

노인을 만나고 온 우리는

어쩌면

노인의 판단이 잘 된 것일 수도 있겠다며

다소

마음을 놓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노인은

다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노인의 출현은

그냥 한 번 다니러 온 것이 아니라

아예

터를 잡고 살겠다며 왔다는 것이었다.

 

노인은

동네 작은 빌라 한 채를 샀다고 했다.

행색도

5년 전에 비해 말이 아니었다.

 

의복도

꾀죄죄 한 데다가 용모는 더 초라했다.

아무리 다섯 해가 지났지만

그렇게 행색이 변할 수는 없었다.

 

몇몇이 옛 정을 생각해서

자리를 마련하고 노인을 불렀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와 몇 사람이 먹거리를 사들고

노인이 사는 집을 찾았지만

만나기 싫다며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후에도

몇 번 노인을 만나자는 시도가 빗나갔고

얼마 못 가 노인의 존재는

우리들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내가

그 후 우연히 노인을 만난 것은

그가 우리 동네에 다시 터를 잡은 지

5년 후이니 꼭 십 년 만이었다.

 

10월도 하순이어서

낙엽이 뚝뚝 떨어지는 일요일 오후였다.

그날

나는 동네 뒷산의 둘레길이라도

걸어볼 요량으로 산책길에 나섰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불타오르듯

붉은 자태를 자랑하던 단풍들이

낙엽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에

여지없이 짓밟히고 있었다.

 

마치

부대끼는

인생의 말로(末路)를 보는 것만 같아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되뇌이며

발걸음을 옮기던 내 눈에

어깨가 축 처져 맞은 편에서 다가오는

그 노인의

초라한 행색이 들어왔던 것이다.

 

나는

반가움에 소리쳐 노인을 불렀고

잠시 주춤하던 노인도

엷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둘레길의 공간에 있는

작은 나무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팔순에 접어든 노인의 얼굴은

굵은 주름살 속에 병색이 짙어보였다.

서로의 건강과

집안의 안녕을 묻는 인사로

노인과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노인은 말을 시작하자

지난 십 년 간 닫았던 입속을

대청소라도 하듯

 

쉴새 없이 말들을 쏟아놓았다.

오히려

내가 간간히 노인의 말을 끊으며

생수병을 건낼 정도였다.

 

동생,

내 말 좀 들어봐.

지난 십 년간

나는 입을 닫고 살아왔다네.

그러다 보니

입 안엔 바늘이 돋고

내 가슴은 새카맣게 타버렸지.

모든 게 자업자득(自業自得)인데,

무슨 말을 더 하겠나.

 

그래서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입을 닫고 살아왔다네.

그게 벌써 십 년이 되었다네.

 

자네들이 그토록 아들에게

재산을 넘겨주면

안 된다고 난리를 부렸을 때,

그때

내 귀엔 아뭇소리도 안 들렸다네.

 

어미를 일찍 여의고

애비 손으로 부실하게 키운 자식이라

뭐든지

해주고 싶었던 게 내 맘이었거든.

그래서

주위의 반대에도

모든 걸 아들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지.

 

10년 전

아들을 따라 S시로 갈 때만 해도

아들과의 사이는 좋았었지.

 

물론

며늘애도 잘 해주었고.

가끔씩 만났던 손자녀석도

할애비라면 지 애비보다도 더 좋아했거든.

 

그렇지만

막상 한 집에서 살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

매일 같이

얼굴을 대하며 살다 보니

손자 놈이 내게 짜증을 내는 거야.

 

이따금 안아서

볼때기에 입이라도 맞출라치면

할애비 한테서

냄새가 난다며 도망을 치는 게야.

그것까지는 괜찮아.

며늘애는 손자 놈을 나무라기는커녕

오히려

샐쭉한 얼굴로 시애비를 쳐다보는 거지.

 

이렇듯

작은 앙금에서 시작된 감정의 골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지.

 

아들도 처음엔

며늘애와 손자녀석을 나무라더니

언제부턴가

내게 불평을 늘어놓는 게야.

 

나중엔 애비 땜에

부부 사이마저 멀어지겠다며

내게 대들었거든.

 

심지어

사업이 지지부진한 것도

애비가 집안 분위기를

흐린 탓이라며 툴툴댔으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내 가진 것 다 주고도 그런 대접 받으며

오 년을 견뎠지.

그러다가 결정한 거야.

 

자식을 떠나야겠다고.

그때 자네들의 비아냥을 들으며

만일을 위해

얼마 간의

내 노잣돈은 남겨둔 게 있었거든.

 

막상

아들 곁을 떠나려니 갈 곳이 있어야지.

그래서 이 동네로 들어온 게야.

 

그때

자네들을 만나고 싶지 않은 건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어.

자네들 충고를 듣지 않고

고집부린 못난 결과를

자네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거든.

 

동생,

이제 내 나이 팔십이야.

얼마나 더 살겠나.

또 살아야 할 희망도 없고.

 

 

그래, 형님.

아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사업은 잘 되고 있겠지요.

 

몰라.

아들 놈하고 소식 끊은 지도

벌써 오 년이 지났네.

명절이 오고 가도 내겐 기별조차 없어.

그렇다고

다시 내 발로 아들 놈을 찾아갈 순 없어.

그 나마

아들에게 그렇게라도 도왔으니

이 애빌 원망은 않겠지.

 

동생,

저길 보게.

낙엽이 길바닥에 수북히 쌓였군 그래.

저 낙엽을 보면

꼭 나를 보는 것 같다네.

 

한때는

싱싱한 젊은 날도 있었고

불타오르듯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지.

그러다가

이젠 길바닥에 떨어져

발에 밟히는 못난 신세가 되었단 말일세.

저 낙엽이 꼭 초라한 내 모습 같아.

허허.

 

노인과 나는

떨어지는 낙엽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by/뱌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