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정도길 기자]
▲ 해수관음상 멀리 해수관음상이 보인다. |
ⓒ 정도길 |
10년 전, 낙산사는 대형 산불로 당우 대부분이 소실되는 큰 피해를 겪었다. 금수강산 자연은 전쟁의 상흔보다 더 큰 폐허를 남겼고, 천년고찰은 그 터마져 흔적을 지웠다. 불자는 물론이요, 전 국민의 신음소리는 천상에 달했다. 그렇다고 아픔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수는 없었다. 국민들의 관심과 불사로 흔적 없이 사라졌던 그 터에 새 생명의 씨를 뿌렸다. 보라! 지금의 낙산사를. 아픔은 치유된다는 진리를, 우리는 낙산사 복원을 통해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의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그 뼈아픔을 드러내어 이웃과 사회가 관심과 사랑으로 같이 한다면,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 낙산사 입구에 하늘 높이 솟구쳐 선 큰 소나무. 그 밑동에는, 화염에 새까맣게 탄 뼈아픈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다.
▲ 응향각 낙산사 응향각 문으로 본 칠층석탑과 원통보전. 사천왕문에서부터 전각이 일직선으로 배치돼 있다. |
ⓒ 정도길 |
우리나라 불교사상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고승을 꼽으라면 원효와 의상이라는 데는 크게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법하다. 신라 문무왕 원년(661년), 두 스님은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다. 한 스님은 잠을 자다 갈증을 풀기 위해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시고는, 화엄의 핵심이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상 모든 일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사상이다.
산불로 폐허가 된 땅,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
이에 반해 정통 유학코스를 마치고 귀국한 의상은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소문을 듣고 낙산의 관음굴로 찾아간다. 천룡팔부 시종이 굴 속으로 인도하고 7일 만에 진용(眞容)을 뵈고 굴에서 나오니, 계시한 대로 땅에서 대나무가 솟아나 금당을 짓고는 소상을 봉안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낙산사의 창건설화이다. 이와 함께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기 위해 간절한 발원으로, 홍련암에서 쓴 261자로 된 '백화도량발원문'은 의상의 화엄사상과 정토신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문으로 꼽힌다.
▲ 원통보전 원통보전과 7층석탑(보물 제499호). |
ⓒ 정도길 |
▲ 사천왕문 낙산사 사천왕문은 사천왕이 지킨 탓인지 한국전쟁 때와 2005년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도 화마를 피했다. |
ⓒ 정도길 |
"그래, 어려움에 처했어도 용케 잘 버텨냈구나. 장하구나!"
사천왕문을 지나 빈일루, 응향각, 7층 석탑 그리고 원통보전으로 이어지는 일직선으로 앉은 전각은 전형적인 사찰의 가람 배치 양식이다. 응향각 문으로 통해 보는 7층 석탑과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보전의 정취가 뛰어나다. 원통보전에서 다시 나와, 낙산사가 관음도량으로 상징되는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길로 접어드니,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란다.
수많은 여행자는 어떤 꿈을 가지고 이 길을 걸을까. 그 작은 꿈을 담기 위해 작은 돌멩이로 쌓은 작은 돌탑. 모두가 소박한 삶의 작은 모습이다.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 큰 꿈을 가져라 주문하지만, 작은 것에 큰 의미를 둔다면 그 보다 더 큰 행복은 없으리라.
▲ 꿈이 이루어지는 길 원통보전에서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숲 길.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라고 한다. 작은 돌멩이로 쌓아 올린 작은 돌탑이 있다. |
ⓒ 정도길 |
내리쬐는 땡볕은 몸을 지치게 만들지만, 하늘 높이 장엄하게 선 관음보살을 친견하러 가는 마음만은 힘이 솟아 난다. 낙산사 해수관음상은 불자가 아니더라도, 동해바다에 구경 와서 들렀다가 참배하는 코스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관음상은 1972년 착공되어 1977년 11월 6일 점안했다.
▲ 해수관음상 동해바다를 보고 서 있는 낙산사 해수관음상. |
ⓒ 정도길 |
"신심은 도의 근원이고 모든 공덕의 어머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온갖 착한 법을 길이 기르며, 의심을 끊고 애착에서 벗어나 열반의 무상도(無上道)를 드러낸다."
관음전에서 108배를 올렸다. 작은 창을 통해 보는, 온화하게 미소 띤 해수관음상의 얼굴은 또 다른 울림으로 가슴을 친다. 기도는 신심과 정성이 기본이다. 믿음이 없는 기도는 하나마나이며, 정성이 없는 기도는 공염불에 그칠 뿐이다. 공염불이란 무엇인가, 신심 없이 입으로만 외는 헛된 염불이요, 정성이 담기지 않은 기도가 공염불이다.
지혜로운 눈이 없어 부득이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업을 지었다면, 업을 소멸시킬 때는 공경한 마음이 담긴 정성으로 가득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지극정성'이라 부른다. 내가 지은 업은 남이 소멸시켜 주지 않는 법. 그래서 기도는 믿음과 정성이 담긴 지극정성으로 올려야 함은 물론이다.
▲ 보타전 낙산사 보타전에는 7관음상, 32응신, 1500관음상이 봉안돼 있다. |
ⓒ 정도길 |
양측과 뒷면으로 32응신과 1500관음상을 봉안해 놓았다. 가히, 우리나라 4대관음성지답게 다양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 4대 관음도량으로는, 낙산사를 비롯하여, 남해 보리암, 여수 향일암, 강화 보문사를 꼽고 있다.
의상의 생애와 화엄사상이 담긴, 의상기념관
▲ 의상대 의상대는 낙산사를 창건할 때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좌선한 것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정자다. |
ⓒ 정도길 |
조금 멀리 해안가 암벽에 자리를 턴 홍련암도 보인다. 홍련암은 낙산사 창건의 모태가 된 암자로 관음굴 위에 자리하고 있다. 당시, 의상대사는 파랑새가 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이상히 여겨 7일 밤낮으로 기도한 끝에, 바다 위 붉은 연꽃이 솟아나고 그 위에 관음보살이 나타난 것을 친견했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내부에는 작은 구멍이 있어 살펴보니 아래로 바닷물이 철썩대며 석굴에 들락날락 하고 있다. 그때 그 파랑새는 어디가고, 연꽃을 피운 바닷물만 굴 속을 드나들고 있다.
▲ 홍련암 홍련암은 낙산사 창건의 모태가 된 암자로 관음굴 위에 자리하고 있다. |
ⓒ 정도길 |
낙산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 탓일까, 의상기념관에서 그의 생애를 엿볼 수 있다. 기념관에는 의상의 진영과 그의 일대기를 그린 여덟 폭의 불화, 화엄의 핵심인 '화엄일승법계도'와 '백화도량발원문'을 담은 10폭 병풍, 서적 그리고 각종 유물이 전시돼 있다.
▲ 108배 양양 낙산사 관음전에서 해수관음상을 향해 108배를 올리고 35번 째 108 염주 알을 꿰었다. |
ⓒ 정도길 |
또 하나의 작은 소망이 있다. 다시는 산불 등 자연재해로 금수강산 자연을 파괴하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108산사순례> 그 서른다섯 번째 여행은 관음도량 낙산사에서 108배를 올리고 염주 알을 꿰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광 .여행,기타 > 관광,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꼬맹이 섬 '가파도', 청보리철 아니어도 좋다 (0) | 2015.11.16 |
---|---|
동화속같은 아름다운 블레드호수 (0) | 2015.11.11 |
여친 가방에 안전조끼 입힌 중국인, 왜 이러니 (0) | 2015.10.30 |
내장산 가을단풍 (0) | 2015.10.25 |
(평창여행) 새하얀 메밀꽃이 들녁을 덮을때 소설의 숲길을 걷다 (0) | 2015.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