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음/시,영상시

속리산에서

청산(푸른 산) 2015. 7. 26. 08:14

속리산에서  - 나희덕·시인,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청  산 - 
 
 

'▣글 모음 > 시,영상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을 오르며   (0) 2015.07.30
기다리는 행복   (0) 2015.07.28
흘러만 가는 강물같은 세월   (0) 2015.07.24
임께서 부르시면  (0) 2015.07.22
새로운 길  (0) 2015.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