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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미리 언덕에서 소멸의 아름다움을 만나다

청산(푸른 산) 2014. 12. 17. 22:32
 
♣♡ 용미리 언덕에서 소멸의 아름다움을 만나다 ♡♣ 

사람이 죽는 일에 무슨 호상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할 
정도로 최근 10여 년간 애상을 많이 겪은 탓에 
난 호상이라는 말에 조차 적의를 느끼고 있었나 봅니다.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이 돌아가시면 우리는 호상이라고 
부르는데 정말 모처럼 호상을 치러봤습니다.
금요일, 오늘 일을 마치면 토요일 일요일은 친구들과 
부산으로 놀러간다고 가을 나들이에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부산에 사는 친구가 넓고 좋은 집에 사는데 
부산 구경을 시켜준다고초대한 길이라 KTX 표를 
한 달 전에 구입해 놓고 기다렸던 일입니다.
그러나 아침 일찍 친구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단체 카톡에 뜹니다.
전날에는 친구 남편이 돌아가시고 친구 모친이 
돌아가시는 줄초상(?) 중에 여행을 가도 좋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의견이 올라오고 문상을 어떻게 할까 
의논하는 중 나는 친구 모친상을 
함께 치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친상을 당한 친구의 남편은 우리 오라버니 대학동창으로 
내가 오빠라고 부르던 분과 결혼해서 두 딸을 낳고 살다가 
10년 전 심장마비로 돌아가셔서 더욱 애틋한 관계입니다.
부산을 가는 일은 다음에도 할 수 있으니까 
친구들에게 여행에서 빼 달라고 했습니다.
부산에 사는 친구는 친구들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걸 다 포기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고 모친상을 당한 친구와 
나는 빠지는 걸로 하고 다른 친구들은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여행 중에 
친구들 사진을 찍어주는 일은 내 소관인데 
미안하게 되었지만 친구 모친상에도 친구와 함께 하는 일이 
도리일 것 같아서입니다
여행을 위해 비워둔 시간이니까 시간은 여유로워 
충분히 장례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금요일 낮 시간과 저녁시간에 
형편이 닫는 대로 문상을 하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친구 모친은 목요일 자정 전에 돌아가셔서 
금요일 하루 조문을 받고 토요일 바로 장례가 진행되어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난 금요일 일을 마치고 상가에 도착해서 친구와 
하룻밤을 같이 자고 벽제 승화원과 용미리 수목장까지 
장례의 모든 절차를 친구와 함께 했습니다.
친구 남편이 돌아가셨을 때 친구가 기가 막혀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숨 차 하던 일과 어린 두 딸의 
애잔하던 모습 때문에 모친의 상가도 쓸쓸하고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앞서 말 한대로 
"이런 경우를 호상이라 말하는 구나."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장례 이었습니다.
친구의 모친은 85세시고 근 이십년 동안 질병에 
시달리셨습니다.당뇨도 있었고 고혈압과 고지혈증 
관절염 같은 성인병은 거의 종합병원처럼 다 가지고 
있어서 친구가 늘 병원을 모시고 다녔는데
이년 전 부터는 요양병원에 모셨습니다.
몸은 아프셔도 쾌할, 명랑하고 화통한 성품이시라 
병원에서도 환우들과 잘 지내셨는데 
두어 달 전 부터는 살이 빠진다고 했습니다.
원래 몸피가 좋은 분이셨고 식사도 잘 하시는데 
이유 없이 살이 빠진다고 하더니 
큰 어려움 없이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어려움 없이 돌아가셨다는 말은 좀 어패가 있기는 
합니다만 요양병원에서 보면 
정말 숨이 넘어가기가 어려운 경우를 많이 봅니다.
체인-스토크스호흡(Cheyne-Stokes  )이라고 해서 
임종시 호흡이 일주일 넘게 지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호흡과 무호흡이 되풀이되는 호흡이상으로, 
작은 호흡으로 시작해 차츰 깊고 수가 많은 호흡이 되고, 
다시 호흡이 얕아지며 20~30초 무호흡 되기도 하는데 
돌아가실 듯 돌아가실 듯하면서도 너무도 길게 호흡이 
이어져서 임종을 지키던 사람들이 지쳐서 돌아가고 난 뒤 
혼자 계시다 돌아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친구의 모친은 "아무래도 상태가 좋지 않다."는 
요양병원의 연락을 받고 자녀들이 다 모여 있는 가운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고 합니다.
의식이 가물거리면서도 친구가 기침을 하면 
눈을 번쩍 뜨시더라고 했습니다.
내 친구도 암 수술을 한 아픈 사람이라 모친은 기침을 
하는 딸이 걱정이 되셨나봅니다.
자정을 몇 분 앞두고 돌아가셨는데도 다니시던 성당에 
연락하니 영안실을사용할 수 있다고 하고 화장장도 
오후 3시긴 하지만 예약이 가능했고 용미리 공원 수목장 까지 
아무어려움 없이 진행이 되자 
친구는 "우리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자녀들을 좋게 하고 
가신다."며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가을날, 낙엽이 뚝뚝 떨어지는 용미리 수목장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석양 무렵 고즈넉하게 누운 묘들이 평화로웠고 
새로 조성한 수목장은 낯설기는 했지만 인생 살다가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길은 너무도 간단했습니다.
나무 한그루에 24분을 모시게 되어 있어서 
나무를 중심으로 시계처럼 24등분을 했습니다.
나무의 뒤를 12시로 치면 정면은 6시가 됩니다.
한시방향 두시방향 세시방향 그리고 1시30분 방향 
이런 식으로 나누어 유골을 안치했습니다.
돌아가신지 하루 만에 모친의 유골은 목침만한 나무 유골함에 
담겨 나왔는데 그 유골함도 다 채우지 못했습니다.
나무 상자채로 묻는 줄 알았는데 지름이 30센티쯤 되는 둥근 
구덩이에 유골을 쏟아 붇고 그 위에 
흙을 덮어버리는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친구 모친은 평소에 유언하시기를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유골에 찰밥을 해서 뭉쳐서 들판에 뿌려 새들이나 동물들의 
밥이 되게 해 달라고 하셨답니다.
그러나 어느 자녀도 어머니의 유골을 그렇게 할 자신이(!) 없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수목장도 어머니 뜻에 거스르는 일은 
아닌 것 같다며 수목장을 했습니다.
죽음이 괴롭지 않고 장례절차나 자녀들이 다 마음이 평안한 가운데
돌아가신 분께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습니다.
나는 최근 동생의 애통한 죽음을 겪으면서 마음이 많이 고통스러웠는데
이렇게 평안한 죽음도 맞을 수 있다는 것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존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뭉텅 잘려 나가는 느낌이 아닌
자연스러운 소멸의 아름다움을 본 장례였습니다.
사는데 골몰하여 죽음을 잊고 있다가도 언제 어디서 
불현듯 닥칠 수 있는 죽음 앞에서는 가까운 사람에게
느꼈던 서운한 감정도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소한 억울함도
다 내려놓게 만드는 치유의 시간이 되는 것이 장례식 인 듯합니다.
                -  순이 블로그에서 -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청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