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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내려놓고 살아야지 ♡♣ 엊그제 생각나는 옷을 찾는데 보이질 않았다. 결국 내 옷을 둔 서랍들을 모조리 뒤졌다. 옷을 찾긴 했지만 서랍을 뒤지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그 동안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움켜쥐고 살았구나. 한두 번 입다가 넣어둔 옷 하며, 색깔이 그래서, 모양이 그래서 그냥 넣어둔 옷들이 장난 아니다. 그뿐이랴. 자식들이 가끔 사다준 와이셔츠며 티셔츠가 비닐포장지에 든 채 그대로 들어 있다. 그것도 모르고 몇 번씩 세탁한 낡은 옷들을 입고 다녔으니 이것도 무슨 병인 게 분명하다. 구두나 운동화도 그렇다. 신발장에는 몇 번 신어 보지 않은 구두나 운동화가 몇 켤레 있다. 그런데도 이삼 년씩이나 신고 다닌 낡은 구두를 한사코 끌고 다닌다. 보다 못 한 아내가 신발장의 구두는 언제 신을거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이 구두가 낡긴해도 발이 편해서 신는다며 고집을 피운다. 이쯤 되면 못 말리는 늙은이임에 틀림없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책도 그렇다. 젊은 시절 한두 권 사 모은 책들이 제법 많아 이사 다닐 때는 엄청 고생을 했다. 이젠 눈도 전 만 못해 책을 읽는 시간도 별론데 아직까지 못 버리고 있다. 한 때는 음악에 빠져 디스크를 사 모으는 통에 이사 할 때마다, 그 문제로 아내와 언쟁을 벌이곤 했다. 지금은 크기가 작은 씨디여서 큰 짐은 아니지만 수량이 많다 보니 그것도 만만찮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왜 쓸 데없는 옷가지며 책, 신발들을 이토록 '알뜰하게' 모아놓고 사는 지를. 아마도 신산(辛酸)의 세월 5, 60년대를 살아왔기에 그와 같은 버릇이 생긴 것 같다. 그때는 참으로 모든 게 귀했었다. 양말도 기워서 신어야 했고, 내의도 몇 번씩 기운 걸 헤질 때까지 입고 다녀야만 했다. 그 깁고 헤진 옷들을 버린 게 아니라 밑의 동생에게 물려주기까지 했으니 그 만큼 생필품이 귀했던 시절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물건 한 가지라도 함부로 버리질 못 하고 차곡차곡 챙겨두는 버릇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젠 내려놓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엊저녁 방송된 '한국인의 밥상'에서 좋은 말을 들었다. 진행자 최불암 씨가 지리산을 찾았다가 느낀 소회를 한 마디했다. "지리산에 온다고 배낭에 뭘 잔뜩 넣어왔는데 제대로 써보지도 못 하고 짐이 되고 말았지요. 우리의 삶도 쓸 데없는 걸 잔뜩 지고 끙끙거리며 살아오진 않았는 지 지리산에 와서 배우고 갑니다." 지금까지 끙끙거리며 지고 왔던 게 옷이며 책, 구두나 디스크 만은 아닐 것이다. 분에 넘친 갖가지 욕심들까지 잔뜩 짊어지고 가쁜 숨을 내쉬며 지금까지 걸어왔을 터이다. 이젠 내려놓고 좀 편안하게 살아야지. 그게 내 남은 삶을 훨씬 즐겁고 건강한 길로 안내할 것이다. - 바위님의 블로그에서 -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청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