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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가 남이가♡♣ 미국에서 거의 40년을 살다가 2012년 8월 말에 이 대한민국으로 이사 와서 산지도 이젠 일 년 하고도 육 개월이 넘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곳을 다녀보았습니다. 사람 사는 일은 어디나 다를 것은 없습니다. 뭐 자기를 아껴주면 좋아하고, 싫어하면 상대방도 좋아할 리 없습니다. 오늘은 부부라는 것에 대해 얘기 해 보렵니다. 촌수가 없어서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고 또 촌수가 없으니 가장 먼 사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래 전에 부산 사나이들의 의리를 그린 “친구”라는 영화의 대표적인 대사는 역시 “우리가 남이가?”일 겁니다. 이를 패러디해서 “부부가 남이가?”라고 해 봅니다. 부부는 무촌이라는 촌수와 마찬가지로, 부부는 살기에 따라 철저한 남이기도 하고 부모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이기도 합니다. 미국에 처음 이민해서 살아보니, 이혼한 부부가 참 많았습니다. 미국에서 군대라는 곳에 입대를 해보니 이혼의 가정에서 자란 친구들이 아주 많았고 자기의 부모가 생부생모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것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의 한국은 이혼이라는 것이 아주 드문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이혼을 한 가정의 아이들은 죄지은 사람처럼 남에게 자신의 가정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부부의 관계 얘기를 하려다 조금 옆으로 흘렀습니다. 내가 겪은 세월 속에서 만난 이들을 네 세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나의 조부모 세대, 내 부모 세대, 나의 세대, 내 자식 세대로 나누어서 부부의 사는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먼저, 내 조부모 세대와 내 부모의 세대는 거의 철저한 남성위주의 유교적 틀에서 살았습니다. 여자는 그저 순종하기를 강요받았고, 남성은 바깥양반으로서의 역할만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아직 대부분의 여자들이 직업을 갖지 않았던 나의 세대에도 유교적인 남성위주의 삶은 계속 되었습니다만,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되어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고 여자의 입김이 세어지는 그런 때 이었습니다. 남녀가 모두 사회에 나가 일을 하게 되는 내 자식의 세대에서는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의 차이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남녀불문, 남녀평등의 그런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 와서 살면서 여러 곳의 관광지를 가보면, 중년과 초로의 여자들의 모습은 눈에 띠게 보이는 반면에 한국의 중년남자들과 초로의 남자들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아주 적습니다. 몇 년 전에 직장일로 미국에서 부산에 와서 있을 때, 아내와 함께 거문도, 백도 여행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코레일을 통하여 2박3일의 패키지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막상 가보니 남자는 고사하고 부부동반으로 온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아줌마들 판이었습니다. 이제 제주로 옮겨와서 산지도 꽤 되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제주올레길 걷기의 열풍이 불어,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찾게 되고 “허”자를 단 렌터카가 온 제주를 누비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모두가 한국의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오신 분들입니다. 아저씨들은 아마도 아직 직업전선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거나 비록 명퇴나 은퇴를 했어도 대한민국의 힘센 아줌마들이 끼워 주지를 않아서, 아마도 등산복을 입고 전철 신세를 지며 방황하는 것 같습니다. 젊은 연인들이나 젊은 부부들이 차를 대여하여 제주를 찾는 경우는 꽤 있지만, 중년과 노년의 부부가 함께 여행하는 부부는 이 땅에서는 소수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왜 늙어가는 부부가 함께 손잡고 여행하는, 중년 및 노부부의 바람직한 모습이 이 땅엔 귀한 걸까요?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특히 어머니가 자식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이유는 자신과 배우자와의 관계가 잘 이루어지지 못해서 이라고 여겨집니다. 아이들은 될 수 있으면 빨리 자기의 독립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게 부모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다 성장한 뒤에 둘 만이 남았을 때, 그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 편하지 않다면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식이 떠난 덩그렇게 큰 집에서, 서로에게 더 이상 아무런 애정이 없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것은 고역일 겁니다. 그래서 이 대한민국의 아주머니들은 밖으로 또 밖으로 나가는 것이고, 자기가 못 나가면 남편에게 최소한 나갔다 오기를 반 강요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우리 세대까지의 비극으로만 남기를 원합니다. 부부라고 해서 각자의 작은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함께 있는 그 자체가 불편하다면 결혼의 의미는 무얼까요? 그래도 이혼하는 것보다는 낫고, 또 함께 즐길 동성 또는 이성의 친구가 있는데 무슨 문제이냐고 말하면 내 답도 궁해집니다. 가족이나 또 그 누구라도 한 공간에서 같이 산다고 해서 친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는 더욱 그렇습니다. 살을 맞대고 살며 애도 낳고 함께 기르며 살기는 하지만, 부부만의 시간을 갖는 지속적인 훈련이 없이는 훗날에 겉모습만 부부인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것도 한국의 과도기적 현상에 불과하겠지만, 무늬만의 부부가 너무 많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조금 엉뚱하고 희망사항에 불과 하겠지만, 내가 사는 이 제주의 올레길 에서 그리고 전국의 여행지에서 더 많은 중년과 노년의 부부들이 행복한 걸음을 함께 옮기는 것을 보는 즐거움도 나의 행복추구 목록의 한 부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부부는 절대 남이 아닙니다.” 라고 내가 말하면, “부부는 남보다 못한 원수” 라고 대꾸 하실까봐 걱정입니다.ㅎㅎ - 주노아톰 메일 글 -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청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