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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볕 속에도 봄볕이

청산(푸른 산) 2014. 1. 14. 09:11
 
♣♡ 겨울볕 속에도 봄볕이 ♡♣ 

악양 평사리 최 참판 댁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얕은 언덕길을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내려왔다. 
예쁘다. 
그 재잘거림이 마치 봄볕같이 따뜻하다.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고 손을 잡기도 한 채 
희희낙락 웃으며 내려가는 그 모습이 내 눈길을 놓아주지 
않는다. 아마도 봄볕을 형상화한다면 
꽃이거나 저런 아이들 모습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경리도 떠나고 최 참판도 떠난 집에서 그들이 만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부재(不在)의 슬픔이 아니라 
호기심과 경탄일 것이다. 사진을 찍고 바라봄으로 
그들은 과거를 기쁘게 재생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소설 한 페이지를 넘기듯이 이 순간을 
넘길 것이다. 겨울이 지나면 꽃이 찾아와 봄을 알려주듯이 
최 참판이 떠나고 박경리가 떠난 자리에 
꽃처럼 예쁜 아이들이 찾아와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부재를 이긴 또 다른 생명들의 피어남이었다.
나는 
최 참판 댁 뒤 공터에 자리한 벤치에 앉아 볕을 쬐었다. 
따뜻하다.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도 지금 내가 살고 있고 
앞으로 또 살아갈 시간 속에도 반드시 시련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울볕 속에도 봄볕이 숨어있듯 시련 속에도 어찌 
희망이 숨어있지 않겠는가. 
진정 두려운 것은 
시련이 아니라 시련 속에서 희망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지나가면 잊히고, 
그리고 
그 잊힌 자리에는 새로운 것들이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어느 날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어느 가수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팬들의 성원에 
인간답게 잘 사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은 적어도 내게는 특이한 답변으로 들렸다. 
'인간답게 잘 살겠다'는 말에 귀가 끌려 
나는 그의 이어지는 말을 경청했다. 
그는 얼굴 신경에 염증이 생겨 안면이 마비되고 
그것이 
청각에 영향을 주어 가수를 은퇴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많이 좋아져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했다. 
아직도 
안면 마비가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비로소 
그의 '인간답게 잘 살겠다'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아픔을 잊고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새롭게 태어난 삶의 소중함을 그는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인간답게 잘 살겠다는 그의 한마디는 
며칠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나를 돌아보게 했다.
가슴을 울리는 말은 진실의 힘이 있다. 
그것은 삶을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희망을 보게 한다.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禪僧) 황벽 희운은 이렇게 말했다. 
"번뇌를 멀리 벗어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니 
화두를 단단히 잡고 한바탕 공부를 지어 가라. 
추위가 한번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랴."
매화 향기는 매화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시련과 향기는 매화의 한 몸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매화는 추위라는 시련 속에서도 향기라는 희망을 
보았던 것이다. 매화는 향기로 추위를 잊었고 
추위를 잊음으로 다시 향기를 만났던 것이다.
벤치에 앉아 
나는 겨울볕 속에 숨어있는 봄볕을 만났다. 
대숲에 바람이 일자 햇살이 사사삭 떨어져 내렸다.
          -惺全 스님· 남해 용문사 주지-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청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