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음/생각의글
친구만 남고 벗은 사라지고 1.친구라는 말, 한자로는 친한 親, 오랠 舊자다. 그 의미인즉 오래된 것과 친하다는 것이다. 오래된 관계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 그것을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에 친구(親舊)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그러나 찬찬히 친구의 의미를 다시 새겨 보면 친구라는 것이 그렇게 생산적인 개념은 아니다. 피차의 오랜 관행을 유지하려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가 발목을 붙잡기 때문이다. 2.친구 좋다는 게 무언가? 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이 말은 무서운 말이다. 분명 남들이 하면 나쁜 짓이고 도저히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짓인데 친구니까 감싸고 친구니까 그냥 봐주는 것을 친구 좋다고 하는 경우들이 많다. 정말 이것이 좋을까? 외양으로 보면 똘똘 뭉쳐서 공생공존하는 것이 친구 같지만 실은 공멸해 갈 수 있는 것이 친구관계다. 서로 봐주기 식의 관행에 젖어들면서 그러한 관행을 되풀이하고 유지하는 관계를 편하게 여기면서 서로를 묶어 둔다면, 그렇게 해야 친구관계가 유지된다면 편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생산적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니까 친구(親舊)라는 말에는 새로움에 대한 거부와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 우리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3.물론 친구에 대해서 비판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충고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도 사실은 계산적이다. 무의식적 계산이 작용한다. 그 친구가 감당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살펴서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선에서 이야기를 한다. 정말 친구와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니까 친구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친구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진실성이나 정직성은 적당히 손상시키지 않을 수 없다. 4.친구와 또 다른 개념으로 ‘벗’이라는 말이 있다. 끼리끼리 무리 짓는 친구가 아니라 관행으로 서로가 발목을 잡는 친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서 자유스러운 그러면서 서로가 길을 묻고 뜻으로 만나는 인생의 ‘벗’이 있다. 사람을 벗할 수도 있고 자연을 벗할 수도 있고 책을 벗할 수도 있다. 워낙 이해관계가 인간관계의 중심이 되면서 우리는 이제 ‘벗’이라는 말의 의미도 잃어버렸다. 친구만 남고 벗은 사라지고. - 옮겨온글 -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청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