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음/생각의글
蓮葉(연엽)에게 - 송수권 그녀의 피 순결하던 열 몇 살 때 있었다 한 이불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때 있었다 蓮 잎새 같은 발바닥에 간지럼 먹이며 철없이 놀던 때 있었다 그녀 발바닥을 핥고 싶어 먼저 간지럼 먹이면 간지럼 타는 나무처럼 깔깔거려 끝내 발바닥은 핥지 못하고 간지럼만 타던때 있었다 이제 그 짓도 그만두자고 그만두고 나이 쉰 셋 정정한 자작나무, 백혈병을 몸에 부리고 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 1번 침대에 누워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혈소판이 깨지고 면역체계가 무너져 몇 개월 째 마스크를 쓴 채, 남의 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 나는 어느 날 밤 그녀의 발이 침상 밖으로 흘러나온 것을 보았다 그때처럼 놀라 간지럼을 먹였던 것인데 발바닥은 움쩍도 않는다 발아 발아 가치마늘 같던 발아! 蓮 잎새 맑은 이슬에 씻긴 발아 지금은 진흙밭 삭은 잎새 다 된 발아! 말굽쇠 같은 발, 무쇠솥 같은 발아 잠든 네 발바닥을 핥으며 이 밤은 캄캄한 뻘밭을 내가 헤매며 운다 그 蓮 잎새 속에서 숨은 민달팽이처럼 너의 피를 먹고 자란 詩人, 더는 늙어서 피 한 방울 줄 수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詩를 쓰는구나 오, 하느님 이 덧없는 말의 교예 짐승의 피! 거두어 가소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청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