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蓮葉(연엽)에게 - 송수권

청산(푸른 산) 2012. 10. 6. 08:13
 
 
蓮葉(연엽)에게 - 송수권

그녀의 피 순결하던 열 몇 살 때 있었다
한 이불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때 있었다
蓮 잎새 같은 발바닥에 간지럼 먹이며 철없이 놀던 때 있었다
그녀 발바닥을 핥고 싶어 먼저 간지럼 먹이면
간지럼 타는 나무처럼 깔깔거려
끝내 발바닥은 핥지 못하고 간지럼만 타던때 있었다
이제 그 짓도 그만두자고 그만두고
나이 쉰 셋 정정한 자작나무, 백혈병을 몸에 부리고
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 1번 침대에 누워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혈소판이 깨지고 면역체계가 무너져 몇 개월 째
마스크를 쓴 채, 남의 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
나는 어느 날 밤
그녀의 발이 침상 밖으로 흘러나온 것을 보았다
그때처럼 놀라 간지럼을 먹였던 것인데
발바닥은 움쩍도 않는다
발아 발아 가치마늘 같던 발아!
蓮 잎새 맑은 이슬에 씻긴 발아
지금은 진흙밭 삭은 잎새 다 된 발아!
말굽쇠 같은 발, 무쇠솥 같은 발아
잠든 네 발바닥을 핥으며 
이 밤은 캄캄한 뻘밭을 내가 헤매며 운다
그 蓮 잎새 속에서 숨은 민달팽이처럼
너의 피를 먹고 자란 詩人,
더는 늙어서 피 한 방울 줄 수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詩를 쓰는구나
오, 하느님 이 덧없는 말의 교예
짐승의 피!
거두어 가소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청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