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한 회상
나는 아버지의 인생사나 가족의 사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얘기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 아버지 본인은 물론이고 아버지 인연들의 사생활은 대부분 괄호 속에 넣었으며,
필요할 경우 가족은 대개 '우리'라는 말로 통칭했다. 나는 이 책이, 죽음의 과정에 들어선 한 실존 생명의 개별 케이스에 대한 나 자신의 극히 실존적인 체험과 관찰 그리고 성찰의 기록으로 읽히기를 원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노화와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다
작가 이상운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10여 년 동안 강의를 했다. 1997년 장편소설 <픽션 클럽>으로 대산창작기금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2006년 장편소설 <내 머릿속의 개들>로 제11회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 <달마의 앞치마>, <불>, <책도둑> 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이 책은 여든여덟 살이던 해에 병석에 들어 아흔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아들인 저자가 함께했던 특별한 삶의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시작되어 맑고 차고 건조한 어느 겨울날 끝난, 1,254일간의 아주 별난 여로(旅路)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노화와 죽음의 과정을 처리하는 우리 사회의 관행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
바야흐로 백 세 시대라고들 한다. 우리는 더 오래 살 수 있게 된 만큼 더 많이 그리고 더 유별나게 노화와 죽음의 시간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성찰하고 더 많이 친숙해져야 하며, 이 초고령 사회가 장차 어떠할 것이고 또 어떠해야 할 것인지 절실하게 묻고 섬세하게 설계해야 할 것이다. 메멘토 모리! - 이상운
서평을 쓰고 있는 나도 몇 년 전 여든 아홉 살의 인자하신 아버지를 여의었다.
설날 연휴 때 허리가 아프다며 자식과 손주들의 세배를 받는 둥 마는 둥 하시곤 이부자리에서 누워 지내셨다. 평소 좋아하시는 온천으로 모시려고 해도 귀찮아 하셔서 우리 자식들은 서둘러 상경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휴일 끝나면 바로 큰 병원에 가서 꼭 사진도 찍고 진찰을 받으라고 당부했다.
이후 병원에서 척추의 한 부위가 노화로 함몰되어 그런 것이라며 간단한 수술 후 일주일 정도 입원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상의하여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입원실에서 회복기를 거치는 동안 자식들은 번갈아 가며 방문해 문안을 여쭈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회복이 늦어지고 수술했던 부위가 계속 아프다길래 당담 의사와 면담을 하고 정밀 검사를 의뢰했다.
나중에 깜짝 놀랄 통보가 왔다. 수술 부위에서 제거한 뼈조각을 검사한 결과 암으로 의심된다는 거였다.
이에 바로 필요한 재검진을 모두 해달라고 부탁했다. 불길한 예감은 예상대로 적중했다. 나이 탓에 천천히 진행된 암은 이미 온 몸을 뒤덮고 있는 상태였다.
다발성 암이고 환자의 노령을 감안할 때, 항암치료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견이었다. 곧 바로 가족회의를 했다. 항암치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버지를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술부위의 통증이 너무 심해 결국 아버지는 집으로 퇴원하지 못하고 병상에서 그해 음력 단오날에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저자의 에세이는 나에게 특별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에세이는 발인날의 감상으로 시작한다. 겨울바람이 매서운 12월 하순 어느 날, 저자는 마흔 시간이 넘도록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눈을 붙여 보지만 이내 잠에서 깬다.
빈소 접대실 여기저기 문상객들이 누워 있다. 장례식장은 적막하고 고요하다. 사무실 야간담당자가 엎드려 자는 모습도 보인다. 그는 고인의 입관 작업을 했던 사람이다.
잠도 오지 않고 시간이 다소 여유가 있어 저자는 아버지가 계셨던 아파트를 잠시 다녀 온다.
아버지의 마지막 체취를 느껴보고 싶어서다. 입관식을 하기 전에 그는 혼자서 아버지 얼굴을 보고 싶어 안치실로 갔다. 작업대 위에 누워 있는 고인의 얼굴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싸늘한 이마에 손을 얹고 속으로 말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국도를 달려 평화로운 묘지에 당도해 소박한 의식을 치를 것이다.
"긴 세월 고생하셨어요, 아버지! 이제 편히 쉬세요!"
삼 년 반 전, 어느 여름날 저자의 아버지는 고열을 앓았다. 그의 부모들 십 년이상 꾸준히 건강검진을 받아왔던 개인병원의 원장으로부터 '건강 상태 양호'를 판정받은 다음날이었으니 매우 놀랄 일이었다. 88세의 아버지는 어쩐 일인지 병원에 가기를 거부했다. 그것도 완강하게 말이다.
살 만큼 살았다고 해서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저절로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죽음이 공포의 대상인 것처럼, 늙은 사람들에게도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다.
무릎 연골이 거의 다 닳아서 걸어다니기가 고통스럽고, 전립선 비대증으로 소변보기도 힘들며, 만성변비에다 혈압도 관리해야 했다. 또 청력이 바닥 수준이고, 황반변성으로 시력 또한 좋지 않은 건강 상태였다.
한 마디로 총체적인 부실이었다. 누구든 건강하지 않은 장수는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고통을 준다. 그러니 병원을 거부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가정에선 간병의 어려움 때문에 대체로 병원에 입원하길 선호한다.
막연하게 병원에 가면 잘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의 경우도 아버지를 입원시킨 후 의사 및 의료진들의 자세에 무척 실망했다. 이들은 환자를 사람이 아닌 그저 병원에 돈을 바치는 실험용 도구로 생각하는 듯했다. 아마 저자도 비슷한 느낌이었나 보다.
"걱정이 한가득이지만 병원에서 전문적으로 잘해줄 테지 하는 기대와 믿음에 마음을 조금은 놓는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이때부터 상황이 몹시 급박하게, 낯설게, 혼란스럽게, 고통스럽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낯선 여로(旅路)에 들어서다
아무튼 저자는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병원에서의 첫날밤, 사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침대에서 고통의 소리를 토해내는 환자 옆에서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아야 아야" 하지만 정작 환자는 자신이 그렇게 밤새 신음 소리를 냈는지 모른다.
이에 대해 전문 용어를 몰랐는데, 이 책에서 저자는 이를 정신과적 증세인 '섬망'이라고 말한다.
나의 경우도 처음엔 허리수술 부위의 통증 탓에 아버지가 앓는 소리를 낸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어머니를 통해 알고 보니 벌써 수술하기 전부터 잠자리에 들면 밤새 아버지 신음 소리 때문에 숙면이 힘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밤새 아버지 곁을 지키다 아침에 어머니와 교대하고 회사로 출근하는 생활이 연속되면서 그때 나도 많이 지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섬망은 불면, 초조, 안절부절못함, 소리 지르기 같은 과다 행동이나 환각 등이 자주 나타나는 증세를 말한다.
그래서 노인 환자의 경우 치매로 오인되기도 하는데, 둘은 전혀 다른 것이다.
치매는 뇌세포가 파괴되어 저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고, 섬망은 뇌기능이 일시적으로 장애를 일으켜 저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치매 환자는 시간이 갈수록 증세가 심해지지만, 섬망 환자는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온다.
"나 집에 좀 보내주시오!"
저자의 아버지는 저녁에 회진을 도는 의사를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많아 곧 죽을 몸이니 굳이 치료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부언했다.
이말을 듣고 의사는 "그렇게 하지요"라면서 웃음만 짓는다. 하지만 저자는 부친의 말에 많이 놀랬다. 입원 후 이런저런 말에도 늘 시큰둥했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죽음은 삶 속의 사건이 아니어서 우리는 살면서 죽음을 체험할 수 없다" - 비트겐슈타인, 철학자
나의 경우를 또 얘기하려 한다. 담당 의사와 상의를 거쳐 항암 치료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말기암이란 사실을 환자인 아버지에게 당분간 숨기기로 했다.
물론 우리 가족들의 회의 결과이기도 했다. 이때 아내는 나에게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간병하는 새벽에 읽어보라며 건냈다. 사실 아내는 시아버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준비를 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피력했었다.
추후 내가 아버지에게 읽기를 권했고, 성경과 함께 아버지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참고로 아버지는 카톨릭 신자였다.
아버지를 집으로 옮기려 했지만 병원에선 보호자의 결정 사항이긴 하지만 집에서의 간병이 여간 쉽지 않다면서 비용이나 편익성을 감안해 입원하는 걸 권했다.
허리 통증이 호전되면 퇴원하자고 아버지와 약속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나빠져서 결국 집으로 모시질 못했다. 이 점이 제일 마음이 아프다.
당시 아버지도 회진 나온 의사들에게 집에 보내달라고 계속 요청했다. 사실 고령의 환자에게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글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고령의 환자에게 그런 방식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유지하게 하는 것은 무의미한 바보짓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제 삶을 마무리하려고 하는 사람을 강제로 살려서 인공적인 생명의 감옥에 중죄수로 가둬두는 잔인한 짓이 될 수도 있다. - 이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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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집으로 모시다
저자는 마침내 결단을 내렷다. 의사에게 정식으로 아버지의 퇴원을 요청했다. 병실에서의 삶이 오히려 악화될 뿐 건강이 호전될 가능성은 제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옳은 일이긴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 보면 하루하루가 창살 없는 감옥일 수가 있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선 후회를 많이 했다. 한 타임을 놓치고 나니 나의 아버지는 마감하는 순간까지 인공호흡기에 의존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순간의 일로 착각한다. 물론 임종을 지켜본 사람은 순간의 일임을 안다.
하지만 노화는 죽음과 더불어 종료되는 기나긴 과정이다. 요즘처럼 수명이 길어진 경우 더욱 더 길어진 지루한 과정일 수도 있다.
여기에 질병이 끼어든다고 생각해보라.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겪게 되는 '죽음의 과정'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대부분의 경우 노인이 병들어 스스로 유지하는 게 어려워지면 즉각 요양병원으로 보내버린다.
가족은 그곳 시스템에 모든 것을 일임해버리고 관심을 떼버린다.
그러나 그처럼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 죽음을 앞둔 병든 노인에게서 그의 오래된 감정적 유대를 단번에 절단해버리는 방식은 참으로 만족스럽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잔인한 짓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어서,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러한 방식이 가지고 있는 잔인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 사계절 날씨와 같다는 것을 아픈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 더더욱 깨닫는다.
청명한 하늘, 봄바람, 비와 눈, 우박, 천둥, 돌풍, 소나기, 아름다운 설경, 낙엽이 깔린 아늑한 숲길, 따스한 가을볕과 마찬가지로, 우리 속에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이 공존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가 어느 날 갑자기 아프기 시작해 육체도 정신도 부서져 가고 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이의 마음은 어떠할까?
육신뿐 아니라 정신까지 급격히 허물어지기 시작한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안타까움이 진하게 느껴진다.
그는 성인용 기저귀를 사야 하고, 헛것이 보이는 섬망에 고통받는 아버지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노화, 질병, 그리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저자는 아버지가 불편한 병원 침대 위가 아닌 '당신 집의 당신의 이부자리'에서, 익숙한 삶의 터전과 감정적 유대 속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자신이 직접 아버지를 돌보기로 한다.
이 특별한 3년 반의 여정을 통해 노화, 질병, 죽음의 고통으로 무너져가는 인간의 애처로운 모습과 아버지와의 교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by/오대석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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