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길 떠나기♡♣
잔잔한 호수에 나무 잎새 하나가 떨어지면 파문이 일듯
우리들 마음도 때로는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시계바늘처럼 빈틈없이 움직이는 일상에 시달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울적해지곤 한다.
잔잔했던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고나 할까.
갑자기 고향생각이 나기도 하고
남해안의 짓푸런 바닷물결이 눈 앞에 어른거리기도 한다.
감칠맛 났던 생선회와 짜릿한 소주 한 잔의 추억까지도.
어머님이 살아계셨을 땐 툭하면 문안을 핑계대고 고향길에 나섰다.
어머님 뵈러 간다면 아내도 말리지 않았었다.
괜히 마음이 심란할 땐 일부러 아내에게 시비를 걸어
명분을 찾고선 훌쩍 고향을 찾기도 했었다.
한이틀 어머님 곁에서 빈둥거리며 동생들과 막걸리를 한 잔
나누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내 입맛을 잘 아시는 어머님은 새벽같이 중앙시장에 나가
병어를 몇 마리 사오셨다. 여기에 백합까지 몇 마리 보태면
흔히 쓰는 말로 '임금님 수랏상'이 부럽지 않았다.
어머님의 병어요리는 횟집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어머님은 손바닥 만한 병어는 뼈채 썰었고,
큰 병어는 뼈를 발라내고 살점만 뭉턱뭉턱 썰어주셨다.
병어회는 어머님 비장의 막장에 봄동이나 배추잎으로
쌈을 해서 먹었다. 생선회를 좋아하는 나는 상추쌈은 피하고
그냥 먹지만 병어회는 봄동이나 배추잎 쌈이 제격이었다.
백합은 대개 초고추장에 찍어 회로 먹었다.
백합을 깔 때 나오는 그 뽀얀 국물의 짭조름한 맛은 별미였다.
요즘은 그런 '사고'가 없지만 예순 이전만 해도
아내에게 예고없이 훌쩍 집을 나설 때가 더러 있었다.
물론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명분도 없고 핑계꺼리도
없으면 무조건 집을 나서고 보았다.
물론 나중에 돌아와서 며칠 간은 꼬리를 바짝 내리고
숨소리도 죽여가며 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뭔가 가슴 속에 치미는 게 있어
벌인 일탈(逸脫)이리라.
십여 년 전으로 기억된다. 그날도 무조건 집을 나서
심야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날 밤은 포장마차에서 한 잔하고
택시기사의 안내로 찜질방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느지막히 시장 안의 유명하다는 해장국집에
들러 해장국에 막걸리를 한 잔 걸쳤다.
무료해서 친구놈을 부를까 하고 말설이는데
옆에서 해장국을 먹던 낯선 중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는 무슨 사연이 있어 아침부터 해장국집에서
막걸리를 따르고 계시느냐는 물음이었다.
사연을 말했더니 자기도 친구 만나러 이 고장엘 왔는데,
시내 구경은 대충했고 오늘은 삼천포로 간다고 했다.
삼천포란 말에 내 귀는 번쩍 뜨였고, 어지간하면
같이 동행할 수 없겠냐고 했더니 좋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해장술에 동행이 생겨 그 중년 친구의 차편으로
삼천포로 가서 잘 놀다왔었다. 물론 그날 밤 신안동
실비집에서 한 턱 톡톡히 쏘긴 했지만.ㅎㅎ
이것도 그나마 젊은 시절의 객담이다.
이젠 그럴 열정도 힘도 사그러들고 있으니
그저 세월만 한탄할 따름이다
-옮 겨 온 글 -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청 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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