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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밤이 오고 있다 *♣* - 나희덕 질주하는 차들은 그녀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도로변에 누워 있는 것은 식당의 환풍구에서 나오는 더운 바람 때문이다 그 식당은 가장 늦게 문을 닫는 편이다 음식 냄새가 시장기를 자극하지만 무디어져가는 감각과 의지를 그렇게라도 일깨울 필요가 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냄새에 따라 접시 위의 음식을 상상해보면 식탁을 가졌던 시절이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한다 필요 없는 것들로 불룩한 아이의 주머니처럼 상상의 식탁은 음식으로 가득 찬다 음식에서는 이내 죽음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하나밖에 없는 담요는 개를 감싸주고 담요에 싸인 개가 살아 있는 담요가 되어주는 저녁, 온기와 냄새를 좀더 비축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오늘은 운이 좋은 편이다 따뜻한 커피를 건네준 사람이 있었으니까 커피가 식기 전까지 세상은 마실 만했다 그러나 밤이 오고 있다 여우의 눈동자를 지닌 밤이 오고 있다 물론 그녀는 밤에 움직이는 것들을 잘 알고 있다 길 잃은 개들과 고양이들, 또는 쓰레기통을 뒤지다 달아나는 여우들, 술 취한 남자들이 갈기고 간 오줌 냄새와 변태성욕자들, 또 다른 노숙의 달인들에 관해 동물적인 감각으로 익혀온 바가 있다 그러나 어젯밤이 지나갔듯이 오늘밤도 지나갈 것이다 갈라진 시멘트의 혈관에서 냉기가 흘러나온다 그녀는 자벌레처럼 몸을 굽혔다 뻗는다 벌거벗은 한뼘의 땅 위에 약간의 빛과 굴광성의 영혼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려는 듯 환풍구를 향해 길게 숨을 들이쉰다 잠든 개를 천천히 쓰다듬는다 이 온기가 남아 있는 동안은 견딜 만하다고 중얼거리면서 - 옮겨온 글 -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청 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