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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모음(3)

청산(푸른 산) 2012. 5. 26. 20:45
★청산인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벚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청산인

벗 하나 있었으면 마음 울적할 때 저녁 강물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 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흙 속에서도 다시 먼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청산인

그대 잘 가라 그대여 흘러흘러 부디 잘 가라 소리없이 그러나 오래오래 흐르는 강물을 따라 그댈 보내며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어둠 속에서 키 큰 나무들이 그림자를 물에 누이고 나도 내 그림자를 물에 담가 흔들며 가늠할 수 없는 하늘 너머 불타며 사라지는 별들의 긴 눈물 잠깐씩 강물 위에 떴다가 사라지는 동안 밤도 가장 깊은 시간을 넘어서고 밤하늘보다 더 짙게 가라앉는 고요가 내게 내린다 이승에서 갖는 그대와 나의 이 거리 좁혀질 수 없어 그대가 살아 움직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름다와 보이는 그대의 자리로 그대를 보내며 나 혼자 뼈아프게 깊어가는 이 고요한 강물 곁에서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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