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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나 하고 가거라. *♣*
재주 있는 한 젊은이가 첫 벼슬을 해 가지고 어른들께
부임 인사를 다니던 차 좌의정을 지낸 류후조 대감을 뵈오러
가는데 큰 내가 있었다.
그래서 건너편 에서 맨상투 바람으로 낚시질을 하는 노인을 불러
건네줄 것을 요청했다.
젊은이가 노인의 등에 업혀 가다가 망건에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이 달 수 있는 옥관자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제야 그 노인이 바로 류대감인줄을 알고 젊은이는 등에 업힌
채 덜덜 떨면서 내리려 하자 노인이 연유를 물었다.
"너, 왜 그러냐?" "대감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물을 건너 저 언덕에 내려 놓으니 젊은이가 땅바닥에 엎드려
백배 사죄를 하였다. 이 때 류대감이 "누가 알면 큰일 나니
아무 일없는 것같이 하고 기왕 날 보러 왔으니 어서 인사나
하고 가거라."하며너그럽게 용서해 주었다고 한다.
살기가 팍팍하여 툭하면 짜증을 내고 대수롭지도 않은 일 가지고
서로 고소 고발을 하며척을 짓고 원수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이지 않은 잔잔한 관용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소개를 합니다.
저는 우리 역사 속에서 이런 류후조 대감과 같은 소탈하고 관용이
있는 선비가 있었다는 것이 정말로 자랑스럽고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격을 도야하고 수행을 하는데 닮아가고자 하는 분 중의
한 분으로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류후조 대감(1798~1876)은 경북 상주출신으로, 고종 때 좌의정을
지낸 분이 십니다.
서애 유성룡 대감의 8대 손이기도 한 그는 벼슬에서 물러난 뒤,
말년에는 고향 상주에 내려와 서민과 어울리며 소박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특히 문안 인사차 많은 관인들이 그의 처소를 찾는 일이 잦아지자,
국가 중책에 바쁜 선비들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한가한 자신이
길가로 나와있는 것이 낫겠다 하며 스스로 낙동강 인근으로 처소를
옮겨 생활했다 하여 일명 '낙동대감' 으로 불리기도 한 분입니다.
철새 정치인과 은퇴를 하면 고향을 등지고 고향사람들로부터
잊혀져 가는 정치인 들이 많은 요즘 세상에서 말년에 벼슬을 놓고
낙향하여 서민들과 함께 소박하게 지내면서 늘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고 소탈하게 살아가신 '낙동대감'과 같은 각계 원로 지도자들이
참으로 그리운 세상입니다.
- 옮 겨 온 글 -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청 산 -